‘트럼프 시대’가 미국의 통합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동의 적(敵)을 연결고리로 한 연대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것 같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별세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41대)은 6일 텍사스A&M대 부시 도서관·기념관 부지 내 장지에 안장됐다. 이 기간 미국의 진보층이 보인 추모 열기가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진보 인사들이 일반적인 추모의 뜻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서 “그가 나의 대통령이어서 자랑스러웠다”고까지 힘주어 말하는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시대가 너무 독(毒)해서 보수 진영의 거목을 애도하며 일종의 해독제를 찾는 것일까.
미국 진보층이 그동안 정치인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아버지 부시’에게도 들이대자면 그 역시 손가락질을 피해 가기 어렵다. 성(性)추문 의혹으로 낙마 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연방대법관이 된 클래런스 토머스를 1991년 지명하고 임명한 대통령이 바로 아버지 부시였다. 1988년 대선에서 흑인 남성에 대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내보내 인종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은 일도 있었다. 아버지 부시 캠프는 한 흑인 살인범이 매사추세츠주 감옥에서 임시 석방된 기간 중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건을 선거 광고 소재로 내세우며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공격했다.
그런데도 진보 성향 매체들과 평론가들은 대부분 그의 영전에 ‘다정하다(genial)’거나 ‘품위 있다(graceful)’란 수식어를 바쳤다.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명칭에 걸맞은 점잖고 기품 있는 태도를 견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보층은 그를 영웅 반열에 올려 세웠다. 최근 미국 진보 진영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좌향좌’ 바람을 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올 8월 별세한 또 다른 공화당의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같은 맥락에서 당파를 뛰어넘은 영웅 대우를 받았다.
‘아들 부시’로 일컬어지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43대)이 최근 현지 언론을 통해 비치는 모습은 더 놀랍다. 무모했던 이라크전과 임기 말 터진 금융위기로 실패한 대통령의 전형으로 남은 듯했던 그는 최근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절친’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더 잦다. 대통령 재임 시절 진보 진영의 일상적 조롱 대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가 미셸 여사에게 건네는 사탕에 진보 매체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놀라운 반전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트럼프 이전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을 향해 강력한 애착을 드러내는 진보층 일각을 향해 ‘정신 차려!’를 외치는 사람들도 보인다. 영화감독 애덤 매케이는 올해 말 아들 부시를 식견 없는 철부지로 묘사한 영화 ‘바이스(Vice)’를 들고나왔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지만 아버지 부시의 별세와 맞물려 부시 가문의 재평가 논의에 다른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매케이는 2일 보도된 뉴욕타임스매거진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때문에 부시가 그립다’는 주장은 화마에 휩싸인 집 앞에서 ‘집에 벌 떼가 들끓던 시절이 그립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부시의 별세와 이로 인한 부시 가문에 대한 우호적 열기에 각성의 찬물을 끼얹을 태세다.
TV 방송 작가 브라이언 베하르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버지 부시의) 애국심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훌륭한 사람이었다”라고 적었다가 팔로어를 대거 잃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부시를 띄우는 형용사를 못 참는 사람들이 베하르에게 괘씸죄를 씌웠다”고 적었다. 그만큼 지금의 ‘통합’ 분위기가 불편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분간 친(親)트럼프 진영만을 제외한, 나머지 집합들의 화합 분위기는 계속될 것 같다. 5일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엄수된 아버지 부시 장례식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바로 옆자리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반면 연단에 서서 아버지 부시와의 우정을 논하는 아들 부시를 향해선 시종일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미국의 진보 성향 시민들의 속마음이 클린턴의 얼굴에 정확히 ‘Copy & Paste(복사하고 붙여넣기)’된 듯한 제스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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