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일본의 한 출판사가 유행어 톱10을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 선정된 유행어 중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밥 논법’도 포함됐다. 올해 초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논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등으로 추궁받았던 아베 총리가 사실 확인을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의도적으로 답을 미루거나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식사를 했는지 알기 위해 “밥 먹었냐”고 묻는 질문에 “빵을 먹었다. 밥은 안 먹었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최근에도 밥 논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올해 초부터 외국인에게 문호를 크게 개방하겠다며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 관한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혀 왔다. 8일 여당의 다수 찬성으로 가결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특정기능 1·2호 비자 발급 문제다. 특정기능 1호는 단순 노동 14개 분야를 대상으로 최장 5년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고 특정기능 2호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외국인에게 장기간 일본에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1호 취득자가 일정 자격이 되면 2호 자격을 얻을 수 있고, 2호 취득자는 체류 기간을 갱신할 수 있으며 가족까지 대동할 수 있다.
그래서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사실상 이민정책이나 다름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도 “그동안 외국인 이민을 막으며 문화적 동질성을 지키려 노력해 온 일본 사회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10일 임시국회 폐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민정책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그럼 이민정책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국민이 우려하는 이민정책을 펼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할 뿐이다. ‘국민이 우려하지 않을 이민정책’은 도대체 무엇인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아베 총리의 이민정책 ‘밥 논법’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내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이주민에 부정적인 보수층과 구인난 해소를 위해 과감한 이민정책을 지지하는 재계 모두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기자와 가까운 한 일본 언론인은 “민감한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아베 정부의 애매모호함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여대야소의 상황인 만큼 적당히 넘겨도 된다는 ‘독단’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밥 논법’이 국제안보 문제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정부는 최근 대형 호위함 ‘이즈모’의 헬기 탑재형 갑판을 F-35B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개조 방침을 밝혔다. 전투기 이착륙 기능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사실상 항공모함을 보유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전쟁 포기(1항)와 전력 보유 불가(2항)를 명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모함 같은 공격용 무기를 보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 정부와 집권당인 자민당 측은 “어디까지나 ‘다용도 호위함’”이라고 우긴다. 아사히신문은 6일 “항공모함 보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호칭의 변경은 (평화헌법 위반이란)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도 아베 총리의 동문서답 논지 이탈 ‘밥 화법’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 같다. ‘올해의 유행어’로 웃어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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