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은 인류 역사에 아주 중요한 날짜로 기억될 만한 날이다.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국제단위계(SI)의 7개 기본단위 중 4개의 기본단위를 재(再)정의하는 역사적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표단도 한국을 대표하는 미터협약의 정회원으로 회의에 참석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필자도 현장에서 한국 대표로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질량의 기본단위인 킬로그램도 재정의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혹시 내 체중 표시에 변화가 생기지 않나 하고 호기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 실생활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기존의 측정값과 차이가 나지 않도록 재정의가 설계됐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 ‘표준’은 엄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주변에 많은 기준이 있지만 측정에서 표준은 국가 권력조차도 이의 없이 따라야 하는 최고의 약속이다. 역사적으로 측정의 기준인 단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과학자의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길이의 단위인 1미터(m) 정의를 지구 사분자오선(북극부터 적도까지)의 1000만분의 1로 하고 그 길이를 정한 것은 과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덕분이다. 당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명을 받은 지구자오선 탐험대는 혁명과 전쟁 중에도 국경을 넘고 첩자로 오인을 받으며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6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오선 길이를 정확히 측정했다. 미터원기는 그런 위험과 힘든 여정의 끝에 어렵게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단위들은 과학계의 힘겨운 노력에 의해 정해진 것이지만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최고의 기준이 되기에는 허점이 있었다. 특히 국제도량형국에서 노심초사하며 보관하고 있는 1킬로그램(kg) 원기의 질량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 것이다. 미터협약의 기본 정신인 불변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고, 고민한 끝에 변하지 않는 자연계 물리상수를 사용하여 단위를 새로 정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위의 정의를 물리상수들로 간략하게 수식화해야 하고, 이러한 수식에 따르는 측정 결과의 편차가 실험자 사이에 1000만분의 1 수준 이내가 되도록 측정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2000년대 초에 연구개발을 시작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연구하고 검토한 끝에 마침내 기본단위 4개를 물리상수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기본단위 4개가 불변의 물리상수로 재정의돼 낙후된 측정 단위가 눈부신 과학 발전과 기술 혁신을 발목 잡을 일은 없어졌다.
기본단위는 기초과학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근간이다. 특히 미래의 과학과 산업 활동에서는 더욱 극한의 측정 조건들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기초과학을 중시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당장 경제 발전에만 매몰돼 인류사적 발견과 혁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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