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윤석열 앉히려 내쫓은 이영렬 무죄판결 법원에서 내려져
첫 단추 잘못 끼워진 검찰
무리한 수사로 투신자살 불러…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기무사령부 세월호 사찰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 투신자살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해서는 따로 아는 바 없지만 육사 37기가 자부심이 강한 기수라는 점은 알고 있다. 육사 37기 중에는 특전사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도 있다. 대위 시절의 젊은 그를 군 복무하면서 본 적이 있다. 유창한 영어로 한미 군사훈련을 조율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행동과 자세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때의 강렬한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재수 전인범 등은 동기들 중 선두주자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유서에서 보듯 죽으면서까지 절제와 배려를 잃지 않은 태도에서 그가 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에 대해서는 세월호 구조에 군이 대거 투입된 이상 기무사는 민간 동향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전 사령관의 죽음은 검찰의 몰아가기 수사 앞에서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한 것으로 본다.
이 전 사령관의 투신에서 문재인 정권 검찰의 원점(原點)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원점에서의 심각한 오염이 최근 법원에서 확인됐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당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영란법 위반으로 쫓겨났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특검팀에 있었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이 전 지검장은 김영란법 위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면직 처분에 대해서 무효 판결을 받았다.
원점 오염의 발단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 신문의 보도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날로부터 5일이 지난 지난해 5월 15일 이영렬 당시 지검장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에게 연루돼 조사를 받던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법무부에 파견된 후배 2명에게 100만 원씩 든 돈 봉투를 줬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죄가 성립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죄가 성립한다 해도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안 국장을 쳐내기 위한 무리수인가 생각했는데 이 지검장도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즉각 윤 고검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안태근이 아니라 이영렬을 쳐낼 목적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보직은 법무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는데 법무장관은 제청하기 전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이영렬은 사법연수원 18기이고 윤석열은 23기다. 둘 사이에 다섯 기수의 차이가 있다. 검찰 고위직의 후임 인사는 기껏해야 두 기수 차이가 관례다. 기수 차이만으로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시비를 걸 수 있는 인사다. 그러나 당시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두 공석이었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날 법무장관 권한대행인 이창재 차관과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김주현 대검 차장도 사표를 냈다. 두 사람 다 대행일 뿐인 데다 돈 봉투 사건에 동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는 마당에 청와대가 하는 인사에 시비를 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비를 걸지 않고 고분고분 사표를 내 준 덕분에 퇴직 후 변호사로 잘 활동하고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영렬처럼 뭔가로 꼬투리가 잡혀 수사를 받고 변호사 개업은커녕 법정 투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지검 특수부 평검사 시절의 이영렬을 기억한다. 과묵하게 맡은 일을 하면서도 한칼이 있는 스타일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은 박영수 특검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그가 맡아 처리했을 일이다. 특검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수사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렬을 자르고 윤석열을 앉혀야 했던 것은 청와대가 통상의 검찰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에까지 보도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에서 누락했다고 국방정책실장을 직위해제했다.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자 공관병 갑질 의혹을 터뜨려 망신을 주고 고철업자 친구에게서 184만 원어치 향응을 받았다고 옷을 벗겼다. 하급 부대에 전달되지도 않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갖고 쿠데타 시도인 양 야단법석을 떨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과녁을 맞혔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검찰도 청와대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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