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도심을 전쟁터로 만든 노란 조끼 시위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중국발 미세먼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사건은 인류가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공통적인 원인에 따라 일어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며 국제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외교 정책을 펼쳐왔다. 그는 특히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많아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 무시 환경 정책으로 사기가 떨어진 미국 과학자들을 프랑스로 유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의 배출 원인인 화석연료의 사용을 억제하려고 유류세 인상을 제시했다가 노란 조끼 시위대에 역습을 당했고 관련 정책을 백지화해야 했다.
이달 6일자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어느 파리지앵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당장 기름값이 오르면 빠듯한 주머니 사정이 걱정스럽다며 오히려 시위대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달 미국 연방정부 소속 13개 연구기관은 이번 세기에 인류가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국내총생산이 10%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등 대기오염이 심한 국가들이 어떻게 미국에 ‘감 놔라, 배 놔라’라고 할 수 있냐”며 “미국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지 않았냐”고 반문해 빈축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석탄 및 석유산업 종사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한창인 중국은 그동안 억제하던 석탄 기반의 전력생산을 슬며시 풀었다. 결국 대기오염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며 한국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는 화석연료에서 나왔다. 1200년대부터 석탄을 사용한 영국은 증기기관의 도입과 함께 산업혁명의 서막을 열었다. 인류는 이전 세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항공기를 타고 원거리를 쉽게 이동하며 여가를 즐긴다. 화석연료는 밤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인공의 빛’을 제공한다. 현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저렴한 조명의 등장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의 1998년 연구에 따르면 수천 년 전 초는 동물의 지방으로 만들었다. 매우 어려운 공정이라 당시 사람들의 하루치 임금으로 60W의 빛을 10분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의 출현으로 현재 하루치 임금으로 6만5000시간 이상의 빛을 낼 수 있다. 처음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은 이 발명품을 어디에다 써야 할지 고민했다. 전구는 만들었는데, 가정과 사업체에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다. 전구 상업화를 위해 에디슨은 1882년 뉴욕 맨해튼에 발전소를 세웠는데, 가입자 82명의 전구 400개를 켤 정도의 전력을 공급하는 수준이었다. 석탄을 사용한 이 발전소가 점차 규모를 키우면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물질 문제가 거론됐다.
결국 미세먼지와 오존,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인류의 화석연료 중독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석연료 중독에서 쉽게 벗어날까? 최근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아직 화석연료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설치된 이반파태양열발전소의 발전용량은 392MW(메가와트)다. 국내 보령화력발전소(5350MW)와 고리원자력발전소(3137MW)와 비교할 때 턱없이 작은 규모다. 이반파발전소 부지는 14.2km²로 크기가 여의도의 4배가 넘는다. 땅이 좁고 산림이 많으며 비가 자주 내리는 환경에서는 태양열발전이 아직 화석연료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냉철한 현실적인 판단으로 국가 전력의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당장은 귀에 솔깃한 정치적 구호나 선언적 목표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대국민 사기극으로 판명된다. 좌우 정권을 막론하고 수없이 겪어왔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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