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소망은 평등한 사회이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후 만들어진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라는 말로 시작한다. 평등한 권리의 원칙이 훼손되는 순간 평화가 깨지고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월한 권리를 점한 집단은 불평등한 하위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유지하고 또 숨긴다. 제국의 침략자들이나 상위 카스트, 경제적 상층계급들은 원주민을 박해하고, 하위 카스트를 오염되었다고 믿으며 하층계급이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젠더 불평등은 이러한 여러 형태의 차별과 만나면서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 인구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므로, 갈등과 혐오의 양상과 정도가 매우 복합적이고 심각하다.
이제 이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세계인권대회는 “여권은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라고 선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더욱 다각적인 모습을 띠며 확대되어 온 가부장제, 즉 남녀차별의 구조는, 빠른 속도로 변화되어 온 한국 사회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겪는 동안 우리 사회를 압도한 민족 독립과 민주화의 염원은 젠더 갈등의 표출을 억압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말 민주화 대선언 이후 가장 먼저 폭발한 시민운동이 여성운동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반성폭력운동은 그 폭발력이 엄청났다. 사회 발전에 따라 인권의 개념도 확대되어 왔지만, 가장 중요한 권리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personal integrity rights)이다. 젠더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성폭력, 가정 폭력뿐 아니라 미군과 관련된 성폭력,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폭력을 고발하고 치유를 요구했다. 이에 더해 성추행, 성희롱,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에 의한 무차별적 폭력은 현재 젠더 갈등의 최전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비하의 기본 구조를 유지시키는 성매매는 여성 혐오와 비하가 얽힌 모순의 극단적 형태이다. 이 폭력에 대항한 최근의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나서서 피해를 증명하는 모습으로 정의가 숨어버린 느낌이 든다. 남성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므로, 보다 궁극적인 인식 전환의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구조적으로 뿌리가 깊은 경제적, 정치적 차별은 여성 비하와 혐오가 은밀하게 작동하여 이룬 결과이므로, 이 분야에서 성평등을 이루는 일은 ‘점진적 실현(progressive realization)’의 인내를 요구한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농업 인구가 많고 산업화의 수준이 낮은 나라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아직 매우 중요하며, 특히 직업의 차별, 임금 차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 발전과 자동화 과정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는 기술 교육으로부터 새로운 일에 대한 고용을 포함하여 전 영역에 걸쳐 필요하다. 여성의 정치적 의사결정 참여는 젠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름길과 같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선 젠더 평등도 빠르게 진전되어 왔지만,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근본적인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 여성의 역량화에 기반한 사회 진출은 아직도 일-가정 양립이라는 장애에 부딪혀 더디다. 남녀 역할 분담이라는 가부장적 개념이 인권 침해이며, 여성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우리 사회의 학습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외국인 차별, 평화 정착의 문제, 기초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 같은 심각한 인권 과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존중하는 이러한 일들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협력하는 것도 젠더 갈등을 넘어서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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