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먹거리창업센터에서 만난 기업 대표 2명을 인터뷰했다.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농식품 분야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6년 12월 설립한 곳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별 머뭇거림 없이 나온 둘의 대답은 비슷했다. 한 명은 “웬만하면 시작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주변에서 창업하겠다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만나본 창업인들이 대부분 그랬다. 농업, 자동차 애프터마켓, 로봇, 앱 개발, 전자상거래 등 분야는 다양했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창업을 권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기자가 만나는 창업인 정도라면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큰데도 그랬다. 한 창업인은 “창업을 하고 나서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의 밑바닥을 보게 됐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심리 상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기회를 갖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서 성공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한국을 창업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비단 정치인만이 아니다. 소위 깨어 있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대기업과 공무원에 목매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창업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과감한 창업을 장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한입에 먹기 편한 꼬마감자를 활용해 창업에 나선 28세 청년 두 명은 재료 수급을 위해 찾아간 감자 농가에서 “어린애들이 뭘 하겠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허브로 불리는 파리 스테이션F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은 “한국에서는 창업 자체는 쉽다. 문제는 ‘그게 다’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창업한 지 1년을 갓 넘긴 앱 개발 기업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회사를 찾아가면 매출 실적부터 요구한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 중소기업 공장에 적용하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다.
대기업을 나와서 스타트업을 세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대기업 다닐 때보다 많이 버느냐”는 것이다. 질문의 이면에는 ‘그 좋은 회사 때려치우고 나갔으면 돈을 더 벌어야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돈을 덜 벌면 실패, 더 벌어야 성공이라는 시선이 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창업인들도 이런 질문을 자꾸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진정 창업을 장려하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 삶 속의 실제 문화가 바뀔 필요가 있다. 내 앞에 있는 청년의 과감한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에 관대한 문화로 말이다. 앞서 얘기한 ‘웬만하면 창업하지 말라’던 대표에게 재차 조언 좀 해달라고 조르니 그는 “일단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디 2019년 많은 창업인의 인내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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