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가 아직 살아 있었다. 이달 17일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짓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확인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성공 사례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조인식 하루 전날인 이달 5일 광주형 일자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광주시가 갑자기 노동계의 의견을 수용해 ‘누적 생산 35만 대 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는 조항을 없앤 수정안을 현대자동차에 제시했고 현대차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성사만 되면 노사정 대타협을 구현하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 우려가 많다. 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현실보다 명분이 앞선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은 연간 10만 대 정도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현대차로부터 배정받아 위탁 생산할 계획이다. 그런데 경차 생산은 2012년 20만 대에서 작년에 13만 대로 떨어졌다. 올해는 작년보다 10% 이상 줄었다. 경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국내 생산 자체가 공급 과잉 상태다. 공장 신설은커녕 있는 설비도 줄여야 할 판이다.
둘째, 상대방은 생각 않고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최근 몇 년째 국내외 매출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소차 전기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 혹은 수익성 높은 고급 대형차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갓 출범한 정부가 대단한 의욕을 보이는 사업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최저임금 피해에 대한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우려도 무시됐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데 뒷감당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요즘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영업자 대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임대료, 카드수수료 대책 외에 어제는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을 또 내놓았다. 채무를 감면해주고 18조 원어치의 전용 상품권을 발행하겠다고 한다. 모두 뒷북 정책들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실물이 있는 프로젝트다. 일단 공장을 짓고 사람은 뽑고 보겠지만 생산된 차가 계획만큼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 광주시 재정자립도는 39.9%로 6대 광역시 가운데 최하위다. 뒷감당이 쉽지 않다.
이렇게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광주형 일자리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차 노조의 횡포를 더 이상 보고 있기 어렵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기아 현대 르노삼성 쌍용 한국GM 등 한국 완성차 업체 5곳의 평균 연봉은 9072만 원이다. 일본 도요타는 8391만 원, 독일 폴크스바겐은 8303만 원이다.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한국 5사가 12.3%, 도요타가 5.8%, 폴크스바겐은 9.9%다. 그러면서도 현대차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5년을 빼고 매년 파업을 벌여 왔다. 도요타는 1962년 이후 56년째 무파업이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에서도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이 공급 과잉을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값 연봉으로도 비슷한 품질의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례를 우려하는 현대차노조 그리고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민노총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려면 3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신뢰, 신뢰, 신뢰’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노동-회사, 정부-회사, 정부-노동 3자 관계 모두에서 신뢰가 절대 부족하다. 일단 자기가 생색내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정치인들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그래도 정 추진하려면 강철 같은 구속력이 있는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추후 애물단지가 되면 결국 그 피해는 지역 주민 그리고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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