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군인이셨습니다. 늘 강원도 전방에 계셨죠. 크리스마스이브 오후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 부대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좁고 꼬불거리는 눈길을 한참 달려 종점에 도착하면 아버지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계셨죠. 새까맣게 탄 얼굴에 군용 잠바를 입으신 아버지는 이순신 장군 동상 같아 보였죠.
아버지는 저녁 식사로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짜장면을 사주셨습니다. 젓가락질 몇 번이면 사라지는 아쉬움에 우리 형제는 그릇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었죠. 아버지에게 혼났지만, 그 강아지 같은 짓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군인교회에서 자정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수북이 쌓인 눈길에서 우리 가족은 화음을 넣어 캐럴을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셨지만 노래를 잘하셨죠. 아침에 깨 보면 머리맡에 둔 양말 안에 선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원했던 선물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지만, 선물을 받으면 무조건 기분이 좋아졌죠. 우린 신이 나서 온종일 눈 속을 뛰어다녔죠.
우리 형제가 더 큰 후로는 아버지께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형이 찬양 예배 특송 담당이기 때문이었죠. 형과 나는 찬양대에서 노래하면서도 입구 쪽을 계속 힐끔거렸습니다. 드디어 아버지의 커다랗고 꼿꼿한 모습이 보이면 우리는 서로를 보고 씩 웃으며 안심했었죠. 아버지가 오셔야 어머니도 할머니도 행복해져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집에 오셔야 비로소 진정한 성탄절이 되는 것이었죠.
‘Daddy‘s home’은 아주 잘 만들어진 오래된 ‘두왑 노래’를 클리프 리처드가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복잡한 이유로 집을 떠나 있어야 했던 아빠, 혹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노래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노래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역시 복잡한 가족의 꼭 즐겁지만은 않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죠.
성숙하게 노화하는 인간은 현명해지기에 따뜻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니까요. 따뜻한 어른이 그리 흔하진 않죠. 이순신 장군 동상 같아 보이던 아버지가 점점 작아지시고, 가르치기만 하시던 분이 언제부턴가 듣기 시작하시고, 심지어는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십니다. 이제 집에 오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드디어 집에 계시는 아버지가 되신 것이죠.
최근에는 시인으로 등단까지 하셨습니다. ‘성묘’라는 시로. 자랑하고 싶어 소개해 드립니다.
어머니 산소에 다녀와야지.
서른여덟에 혼자되셔 걸핏하면 회초리 꺾어오라 하시던.
종아리 때리시곤 나보다 더 슬피 우시던 어머니께
회초리 몇 개 갖다 드리고 나 홀로 울고 와야지.
옥색 치마저고리도 마음 편히 못 입으시던 어머니께
장미꽃을 머리께에 저고리 고름께에 꽂아드려야지.
‘사랑’이란 구절만 있어도 그 노래 부르지 않던 어머니께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노래 불러드려야지.
행복의 근원은 불행의 근원이 그러하듯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참고 양보하고 위하는 것이 어른의 사랑이고,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른의 기쁨이죠.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성탄절은 그 기본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해주는 중요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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