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한국인이 다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굳이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데 발걸음을 급하게 재촉할 때, 김칫국물이나 국을 먹고 시원함을 느낄 때, 사람들하고 인사할 때 악수보다 고개 숙이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때다. 특히 최근 들어서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주변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인보다 한국인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니 문화가 참 신비롭고 때로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또 이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2009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텔레비전과 방송에서는 국내 연예인들이 대부분 출연하였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화 열풍이 한국을 뒤덮어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방송에서 예능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시대와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다른 점도 크게 느껴진다. 그중 하나는 ‘축제’에 대한 열망과 긴장감이 너무 없지 않나 싶은 점이다. 먹고살기 바쁘거나, 아니면 과거에 축제를 위한 준비를 너무 많이 하여 지쳤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축제를 성대하게 치를 때 한국은 되레 조금 심심하게 보내는 것 같다. 수년 동안 축제나 행사에 참여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이들이 ‘나는 오늘 주인공이다’ 하는 마음이 아닌, 축제나 행사를 일종의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명절이 대표적이다. 추석과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보다 ‘명절 어떻게 보내지’ 하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도 설레는 마음은커녕 부담감을 가지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런 생각들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러 해를 보내다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열심히 일만 해 오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달려왔기 때문에 모두가 집합체로 큰 규모로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릴 때 현실과 텔레비전, 방송, 라디오에서 우리에게 주던 감동을 지금은 현실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인생에 한 번일 수도 있는 나의 결혼식에도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어렵게 학업을 마친 학교 졸업식은 두세 시간, 연말연시 모임도 두세 시간. 모든 것에 시간과 틀이 있다. 그것을 지키는 우리 삶은 때로 ‘이게 삶인가, 나는 행복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땀을 흘린 한국 사회가 결국 즐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니 점점 닮아가고 있다.
최근 주한 몽골인 송년 파티에서 사회를 보게 되었다. 행사 시작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과 긴장감은 없었다. 하지만 행사에 찾아온 몽골 사람들의 한껏 차려입은 화려한 옷차림을 보고 활력이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면서 잊고 있었던 파티에 대한 즐거움과 긴장감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과거에 누구보다 축제를 좋아했고 누구보다 적극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특히 일 년 중 가장 많이 기대하는 송년 파티를 위해 두 달 전부터 준비할 정도였다. 송년 파티 당일에는 무조건 주인공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렸다. 몽골뿐만 아니라 옛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많은 나라 사람들은 이처럼 송년 파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물론 서로 다른 문화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이제 조금 더 축제나 행사를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보내는 것이 새로운 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 시민들도 일 년 중 하루라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연예인 시상식처럼 모두가 한껏 차려입고 일 년 동안 함께 일하고 지내온 것을 회의실이 아닌 멋진 분위기에서 축하하고 기뻐하며 보내는 송년 문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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