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 바로 앞 대만의 작은 섬 진먼(金門)은 고량주, 궁탕(貢糖·과자의 일종)과 함께 ‘포탄칼’이 3대 특산품이다. 가볍고 견고해 인기가 좋은 이 칼은 1958년 양안(兩岸) 갈등 폭발 때 중국이 진먼섬에 퍼부은 포탄을 녹여 만든다. 당시 중국군은 첫날 3만여 발, 보름간 47만여 발의 포탄 세례를 가했다. 전쟁무기가 ‘평화 기념품’으로 거듭난 셈이다. 냉전 해체와 함께 무너진 베를린장벽의 벽돌 조각도 독일 현지에서 ‘평화상품’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대결과 충돌의 흉기가 화해와 평화의 상징물로 변신하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극적인 변화일수록 감흥도 커지기 마련이다. 소련 붕괴 후 소비에트 연방국에 남은 다량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이 해체한 ‘넌-루거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 핵탄두에서 빼낸 핵물질(고농축우라늄)은 가정과 공장용 전기로 사용됐고, 해체된 ICBM은 고철로 재활용됐다. 미사일 발사장은 농업용지로 변모했다.
▷군 당국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시범 철수된 최전방 감시초소(GP) 잔해물의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단 보존해 놓은 뒤 장차 철근은 녹여서 평화상품으로 만들고, 콘크리트 조각들은 건축자재로 재활용하거나 특정 장소에 전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화해 평화 무드로 급반전된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해체된 분단 상징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군사합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달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최근 육군의 모 사단장이 GP 철수 잔해물인 철조망으로 기념품을 만들어 여당 의원 등에게 선물한 것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선 안 된다. 상부의 잔해 훼손 금지 지침을 어긴 것도 문제지만 최전방 지휘관이 설익은 평화무드에 도취돼 본분을 망각한 점은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변한 게 없는데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쏟으며 휘청거리는 듯한 군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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