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울 장안에서 만나 꽃 사이에 술 마시며 놀았니라 지금 너만 어디메에 가 광야의 시를 읊느뇨.
내려다보는 동해 바다는 한 잔 물이어라 달 아래 피리 불어 여는 너 나라 위해 격한 말씀이 없네.
시 제목의 ‘육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 우리에게 이육사는 광야의 시인 또는 독립투사로 기억되고 있지만 신석초에게 ‘육사’는 시인이기 이전에 절친이었다. 석초는 평생을 두고 친구 육사를 사랑하고 추억했다.
이육사는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신석초는 1909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지역이라든가 나이 차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성인이 되고 나서 서울에서 처음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오래 알던 사람처럼 친해졌다. 그리고 이후로는 거의 매일 만났다고 석초는 회고담에 적어 놓았다. 말술을 마시고도 끄떡없던 친구. 술을 마시던 캄캄한 밤에 슬며시 사라지던 친구. 서로의 고향집을 방문하고 가족의 경사를 챙기던 친구. 나의 시를 읽어주고 세상에 소개해주던 친구. 석초에게 있어 육사는 이런 친구였다.
시가 발표된 것은 1970년 시집 ‘폭풍의 노래’다. 1970년, 신석초의 나이를 헤아리며 시를 읽다 보면 목이 메어온다. 이육사가 사망했던 것은 1944년의 일이다. 1970년이면 육사가 떠난 지도 거의 30년. 오랜 시간 친구를 그리워한 석초의 마음을 생각하다 보면 또 목이 메어온다. 원본 시집을 찾아 보면 이 시 끝에 작은 메모가 붙어 있다. 1968년 5월 안동에 육사의 시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시비를 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어땠을지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우정 덕분에 추억해 본다. 홍안의 젊음으로 장안을 누비던 동무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석초의 육사 같은 친구, 육사의 석초 같은 친구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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