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예일대 기숙사에 사는 백인 여학생(왼쪽)이 흑인 여학생(오른쪽)을 ‘노숙자’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흑인 여학생 롤레이드 시욘볼라 씨 페이스북 캡처
예일대 기숙사에 사는 백인 여학생(왼쪽)이 흑인 여학생(오른쪽)을 ‘노숙자’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흑인 여학생 롤레이드 시욘볼라 씨 페이스북 캡처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주제는 ‘미국, 이것만은 고쳐줘’. 오늘은 인종차별 문제입니다. 저 역시 미국에 체류할 때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많이 고쳐졌지만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 피해자들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I deserve to be here.”

미 예일대 기숙사 공용 공간에서 한 흑인 여성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기숙사에 사는 백인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합니다. 백인 여학생은 흑인 여성을 보고 ‘노숙자’ 또는 ‘범죄자’라고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흑인 여성은 같은 기숙사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다가 잠든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알고 난 뒤 화가 난 흑인 여성은 소리칩니다. “나도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어.”

△“I try to put myself in other people‘s shoes….”

미국에서는 소방관들이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화재 예방조사(fire inspection)를 합니다. 그런데 흑인 소방관이 백인 거주 지역을 조사할 때면 백인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합니다. 평화로운 백인 커뮤니티를 어슬렁거리는 흑인! 소방관 제복을 입고 있어도 ‘가짜 소방관’ 또는 ‘강도’ 등의 의심을 받게 됩니다. 오클랜드(캘리포니아주)의 한 흑인 소방관은 화재 예방조사 임무를 수행하다 백인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도….” 소방관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My only crime had been calling my mother while black.”

포틀랜드(오리건주) 힐턴호텔 로비를 서성이며 어디엔가 전화를 하는 흑인 청년. ‘마약 딜러’ 또는 ‘갱’? 호텔 경비원은 그가 의심스럽습니다. 경비원 2명이 흑인 청년에게 다가가 신분 조사를 하는데 그가 잘 대답하지 못하자 ‘무단출입자’라며 쫓아냅니다. 사실 그는 호텔 투숙객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졸지에 쫓겨난(호텔비도 환불받지 못하고) 흑인 청년은 눈물의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올립니다. “내 죄가 있다면 흑인으로 엄마와 전화한 죄밖에 없다.” 흑인들은 자조적인 상황에서 ‘living while black(흑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힐턴 호텔 측은 문제의 경비원 2명을 해고했습니다. 흑인 청년에게 위로가 됐을까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인종차별#흑인#예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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