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음을 깨달은 건 3년 전 연말이었다.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새해를 기다리던 2016년의 마지막 밤. 문득 둘러보다 알게 된 건, 놀랍게도, 내가 이국의 연말 군중에서 한눈에 한국인을 골라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 클럽을 벗어난 후에도 능력은 지속되어 도쿄에서든 이스탄불에서든 가히 백발백중이었다. 일종의 요령이랄 게 있긴 했다. 축제의 도가니 속에서 순간순간 우울한 기색이 스치는 얼굴. 그건 백이면 백 한국인의 것이었으니까. 분명 새해가 유독 한국인에게만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12월 30일생이다. 말인즉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었고 이틀 뒤엔 두 살이 되었다는 뜻이다. 좋게 봐도 합리적이라 말하긴 어려운 계산인데, 외부에서 보기엔 더 별난 형식이라 위키피디아에도 ‘East Asian age reckoning(동아시아의 나이 셈법)’이라는 항목이 따로 존재한다. “한 살의 나이로 태어나 생일이 아닌 설날 혹은 새해에 나이를 먹는다.” 외국인보다 우리에게 더 충격적일 대목은 그 다음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게 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쓰인다.” 형식의 발상지답게 중국에도 허세(虛歲), 주세(周歲), 실세(實歲) 등 다양한 셈법이 있었으나 결국 현대식으로 통일하는 데 성공했고, 일본 역시 1902년과 1950년 두 차례에 걸친 법령으로 현대식 나이 체계를 일상화하기에 이르렀다. 즉, 오늘날 이런 식으로 나이를 세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뜻이다.
물론 대세라고 무작정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전통의 미덕과 변화의 효과를 성실히 견주지 않은 차용은 사대주의에 다름 아닐 테니까. 다만 첫 생일에 한 살이 되고 다음 생일에 두 살이 되는 셈법의 명칭이 ‘현대식 나이 체계(Modern Age System)’라는 점은(‘서양식 나이 체계’ 따위가 아니라) 곱씹어볼 만하다. 그 대상이 ‘문화 차이’가 아닌 ‘지적 성취’일 때 변화에는 한결 당위가 생기니까.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도 1980년대 이후로 현대식 나이 체계를 사용 중이다. 반면 한국식 나이 셈법의 미덕으로 으레 회자되는 ‘태내의 시간까지 헤아렸던 선조의 지혜’라는 주장은 진위가 불분명하다. 차라리 해당 셈법이 정착되던 당시 중국에 ‘0’의 개념이 미비했던 탓이라는 추정이 한결 자연스럽다. 한국도 행정 영역에서는 현대식 나이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주소도 두 가지 체계를 혼용할 만큼 똑똑하니 나이 체계 정도야 크게 불편할 것도 없을 테다. 다만 연말연시만 되면 눈에 띄게 한숨이 느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 객기(일견 비애감을 자아내는)로 넘실대는 술집 골목을 볼 때, 늘 12월에 병치레하는 것이 ‘한 살 더하는 무게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는 어느 교수의 칼럼을 읽을 때, 나는 해묵은 충치의 존재처럼 한국식 나이 셈법을 떠올린다. 물론 문제의 핵심은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삶을 숙제처럼 여기는 태도일 터. 다만 어떤 때에는, 형식이 먼저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끌어주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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