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말문이 막힌 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스시(초밥)를 처음 먹는다기에 ‘주는 대로 하나씩 먹으면 된다’고 설명해 주려던 찰나, 눈 깜작할 사이 와사비(고추냉이)를 통째로 삼켜 버린 것이다. 친구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심호흡을 해댔다. 우습지만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45년 전쯤 일이다. 이처럼 서양인에게 와사비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와사비는 고사리, 미나리와 함께 오랫동안 일본에서 자생한 산채다. 흐르는 물이나 샘물에서 자라는 것이 최상품이다. 온도가 낮고 촉촉한 땅에서도 자란다. 잘 큰 와사비는 한 뿌리에 1만 원 정도다. 와사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와사비를 즐겼던 그는 자택을 포함한 근교 자생지 외에 외부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17세기가 되어서야 시즈오카현에서 경작됐는데 현재는 와사비 최대 생산지가 됐다.
와사비 수요는 스시와 메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니기리즈시(밥 위에 생선을 얹은 정통 스시)라 부르는 즉석 스시를 처음 개발한 하나야 요헤이(華屋與兵衛·1799∼1858)는 밥이 쉬거나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식초로 스시를 만들고 와사비를 첨가했다. 몇 종류에 불가했던 재료는 새우나 전어 등 거의 모든 해산물로 확대되고 아나고(붕장어) 스시는 고가에 거래됐다. 정부가 스시를 사치품이라 여겨 하나야를 포함한 스시 조리사들을 옥에 가두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1868년 메이지유신 시절쯤 스시의 인기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메밀에 와사비를 추가한 시기는 에도 시대(1603∼1867년)부터다. 가다랑어 국물의 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무를 쓰곤 했는데 한겨울에는 구할 수 없어 대신 와사비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날 메밀집에서는 무와 와사비 모두를 제공한다.
동부 유럽이 원산지인 호스래디시(서양의 고추냉이)는 매운맛은 와사비와 비슷하나 향과 색이 다르다. 와사비는 특유의 고급스러운 향과 녹색이 나는데 호스래디시는 톡 쏘는 무 향이 나면서도 흰색이다. 둘 다 생으로 먹을 때는 크게 맵지 않지만 갈면 특유의 향과 매운맛이 퍼지는 휘발성 식물이다. 호스래디시는 와사비보다 1.5배 맵고 빨리 자라 가격도 무척 저렴하다. 시중에서 튜브나 가루로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이 호스래디시에 와사비를 조금 첨가한 것이다. 열에 약해 요리의 마지막에 넣거나 곁들어 먹는 게 좋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젊은 여성 25%가 스시를 만들 때 와사비를 빼달라고 말한다고 한다. 일부 회전 스시 집에서는 와사비를 첨가하지 않고 따로 내준다.
작가이자 미식가 이케바 세이타로는 와사비를 간장과 섞어 풍미를 느끼지 못할 바에는 재료와 적당량 곁들여 먹는 것을 ‘남자의 매너’라고 말했다. 흰 살 생선은 조금, 붉은 살 생선은 조금 더, 그리고 다랑어에서 지방이 많은 부분(도로)은 충분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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