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85〉얽히고설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9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얽히고설킨 실타래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비탈길
●얽히고설킨 인연

모두 올바른 표기다.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익숙한 데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보다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띄어쓰기일 것이다. ‘얽히고설킨’ 사이를 띄어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멋진 질문이다. 이 단어를 ‘얽히다’와 ‘설키다’로 구분해 내어야 또 다른 질문에 접근할 수 있다. 일단 ‘얽히다’와 ‘설키다’로 구분하여 둘을 비교해 보자.

‘얽히다’는 [얼키다]로 발음된다. 우리말의 ‘ㅎ’은 ‘ㄱ, ㄷ, ㅂ, ㅈ’을 만나면 ‘ㅋ, ㅌ, ㅍ, ㅊ’으로 축약된다. ‘ㅎ’이 앞에 오든 뒤에 오든 마찬가지다.



입학[이팍], 국화[구콰], 박히다[바키다], 읽히다[일키다]

놓고[노코], 낳다[나타], 많고[만코], 않다[안타]


이 지점에서 ‘얽히다’와 ‘설키다’를 보자. 이상한 점이 없는가? 이 둘은 표기상의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다. 앞의 ‘얽히다’의 표기 원리에 따른다면 ‘설키다’도 ‘섥히다’라 적어야 한다. ‘얽히고’의 ‘얽+히+고’를 구분해 적었으니 그 질서에 따라 ‘섥+히+고’로 적어야 일관된 일이다. 거꾸로 ‘설키다’처럼 ‘얽히다’도 ‘얼키다’로 적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맞춤법의 기본 원리 두 가지를 만날 수 있다. 먼저 띄어쓰기의 원리를 보자. 단어는 붙여 적고 조사는 앞말에 붙여 적는다. ‘얽히고설킨’으로 붙여 적어야 한다는 것은 이 말이 하나의 단어라는 의미다.

●어차피 얽힌 인연.(o)
●어차피 설킨 인연.(x)
●어차피 얽히고설킨 인연.(o)

현재 우리말에는 ‘설키다’라는 말이 없다. ‘얽히다’가 갖는 복잡함을 강조하고자 할 때 쓰이는 ‘얽히고설키다’라는 단어 속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각각의 단어로 분리될 수 없으니 당연히 하나의 단어이고 띄어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얽히고섥힌(×)’이나 ‘얼키고설킨(×)’으로 적지 않고 ‘얽히고설킨’으로 적는 이유는 뭘까? 이럴 때는 둘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 좋다. ‘얽히다’를 보자.

●밧줄로 얽어서 묶었다. 끞 얽다
●밧줄로 얽힌 짐을 들었다. 끞 얽히다

현재 우리는 일상적으로 ‘얽다’와 ‘얽히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둘 모두 살아 있는 단어라는 의미다. 이런 경우에는 뜻을 밝혀 적어야 단어 간 의미 관계를 명확히 보일 수 있다. 맞춤법 원리 중 어법을 밝혀 적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다. ‘얼키다(×)’로 적으면 ‘얽다’와 의미적 연관성이 끊어진다.

‘설키다’는 이와 다르다. 일단 ‘섥다’라는 단어가 살아있지 않다. ‘설키다’조차 단독으로는 쓰이는 일 없이 단어 속에만 남아 있다. 이미 사라진 단어이기에 ‘섥-’을 밝혀 적는다 해도 의미를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나 어원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맞춤법 원리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얽히고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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