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한국 사람이었다. 외국인이었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요즘 취재 현장에 가면 외국인을 먼저 찾는다. 내국인의 경우 초상권 확보를 위해 신분증을 보여주고, 사진 찍는 의도와 어디에 게재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몇 년 전 한 대학 축제 현장에서 물풍선을 맞은 여학생의 얼굴을 찍었다가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사진기자가 낭패를 겪은 사례가 있다. 집회와 시위 참석자를 찍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왜 찍었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반면 서울 명동, 남산, 광화문의 외국인들은 사진에 찍히면 신기해하거나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일로 사진을 보내준다고 하면 흔쾌히 동의한다.
초상권에 대한 인식 변화와 몰카 범죄로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게 부담감이 커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찍힌 사진이 불법 유통되는 몰카 범죄 때문에 사진기를 든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하지만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취재해야 하는 사진기자들은 카메라 렌즈를 닫을 수 없다.
최근 신문 경제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유심히 보면 같은 사람들이 시간차를 두고 다른 제품을 들고 나온다. 업체가 전문 모델을 고용해 제품 홍보에 활용하는데 모델 인력풀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형마트나 백화점 홍보행사에는 실제 매장을 찾은 엄마와 자녀를 현장에서 섭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상권 등의 이유로 섭외가 되지 않자 직원들이 직접 모델로 등장했다. 하지만 직원 얼굴이 매번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전문 모델들이 등장한 것이다.
사진 취재가 힘든 곳은 이곳뿐이 아니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담은 사진도 쉽게 볼 수 없다. 소풍 장면이나 놀이공원에서의 신난 표정 등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동심이 묻어나는 장면이라 카메라를 들려 하면 선생님의 “찍지 마세요”란 외침이 돌아온다. 괜히 아이들을 찍었다가는 부모의 어떤 항의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지방자치단체 공식 행사는 어느 정도 용인된다. 그런 경우는 사전에 부모에게 동의를 구한다.
얼마 전 미국 ‘댈러스 모닝뉴스’의 한국인 사진기자를 만나 평소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초상권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미국은 어떤지?’라는 질문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공공장소에서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면 초상권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길거리나 공원을 비롯해 공립학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나 다정한 가족이나 연인들,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운동하는 모습 등도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찍히는 사람들이 신문에 나온다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적인 공간인 집이나 사립학교 등에서는 엄격히 금지된다고 했다. 미국의 한 주(州) 이야기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현장을 지키는 사진기자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우선 찍고 그 뒤 초상권 허락을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다. 얼마 전 최루탄을 피해 기저귀 찬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달아나는 엄마 사진이 미국을 비롯해 한국에도 큰 충격을 줬다. 미국 국경으로 향하던 중미 캐러밴의 실상을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사진의 초상권은 어떻게 됐을까? 사진을 찍은 후에 초상권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사진 속에 등장한 가족들은 난민 신청 우선권을 받아 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와 아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면 지금 같은 반향이 일어났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언론은 요즘 대개 공공장소에서 취재한 사진이라도 주로 뒷모습을 게재하거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이크를 한다. 초상권 문제에 휘말리기 싫기 때문이다. 사진이 주는 메시지와 초상권 사이에서 사진기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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