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3일 21시 20분


불평등지표 팔마 배율에 따르면 한국은 최악의 불평등국가 아니다
잘못된 인식-정책으로 성과 나올까
국민의 알 권리 외면한 신년회견… ‘청와대 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하나

김순덕 대기자
김순덕 대기자
나도 궁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지표가 부진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고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도 현 정책 기조로 계속 가겠다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10일 신년 회견에서 이 질문을 받은 대통령의 입술은 굳어 있었다.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고 새로운 답이 필요하지 않다”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앞서 중국 기자가 한반도 평화 관련 중국의 역할을 묻자 “아까 답을 드렸다”면서도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같은 내용을 반복 설명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경제 대신 짐승중심경제로 가자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지금의 방법도 옳다는 주장은 독선적이다. 경제정책이 옳다는 걸 확실히 체감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올해 목표라지만 이미 적잖은 국민은 소득주도성장 핵심인 최저임금 급등의 폐해를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직원 10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2명이 떠나도 인원 보충을 못 하고, 정부지원책도 복잡해 포기하더라고 9일자 뉴욕타임스까지 세계에 전파했을 정도다.

이런 정책을 바꾸지 않는 근거를 묻자 대통령이 답변을 거부했을 때, 내가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기자는 물어뜯어야 기자다. 대통령 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간신이고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충신”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되레 대통령답다.

다행스럽게도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감의 원천을 노출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인사를 놓고 “친문(친문재인) 강화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안타깝다. 청와대엔 친문 아닌 사람 없다”는 발언을 통해서다.

대통령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작년 말부터 청와대 개편론이 빗발친 건 대통령을 바꿀 순 없으니 비서진이라도 바꿔 국정 쇄신을 하라는 의미였다. ‘운동권 청와대’로 출범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는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영입해 싫은 소리도 청해 들었다. 원조 친문에다 운동권 출신인 노영민 기용은, 마치 원조 친박 김기춘을 불러들임으로써 윗분의 뜻만 떠받들다 결국 몰락을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의 퇴행을 연상시킨다.

친문패권주의와 이념으로 뭉친 ‘청와대 버블’ 속에서 비서진이 어떻게 보고하든, 무엇을 써주든 믿고 따르는 대통령이면 자신감에 불타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는 기자회견문도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잘못 입력한 그대로 나왔을 거다.

‘청와대 정부’는 가짜뉴스 박멸에 나서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극단적 불평등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지표’로 주목한 게 팔마 배율이다. 하위 40% 가구의 소득점유율 대비 상위 10%의 비중을 말하는데 2018년 유엔 지속가능발전지수에 발표된 한국의 팔마 배율이 1.0으로 스웨덴과 같다. 눈을 씻고 찾아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자료 역시 한국은 1.04로 네덜란드와 같다(2015년). OECD 36개국 중 우리보다 팔마 배율이 높은 불평등 국가가 무려 22개국이다!

“양극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대통령 발언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잘못된 인식에서 만든 정책으로 성과를 내겠다며 무리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더구나 “정책 변화가 두렵고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기자회견문을 읽었으니 대체 이유가 뭔지, 베네수엘라처럼 사회주의경제로 가는 건지 국민은 알고 싶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대목은 더 섬뜩하다. 청와대가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면담도 불허하고, 영장 없이 개인 휴대전화까지 탈탈 터는 등 모든 권력기관을 다 합친 것보다 크게 국민을 실망시킨 일이 미꾸라지와 망둥이의 폭로로 드러났는데도 어떻게 써준 대로 읽을 수 있나.

문 대통령은 “정책의 최종적인 결정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그렇게 법과 제도와 국민 위에 존재한다면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한 건지 꼴뚜기에게 물어보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버블#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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