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이 하나도 없다고 되풀이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호르헤 보르헤스 ‘아스테리온의 집’
남미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호르헤 보르헤스는 상식의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 입장만을 고수하려는 사고를 가졌는지 환기시킨다. 그의 단편 ‘아스테리온의 집’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 테세우스 이야기를 뒤집는다. 보르헤스는 미로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상징하는 아스테리온을 화자로 그렸다.
황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아스테리온의 집은 미로다. 하지만 닫혀 있는 문은 하나도 없으며 자물쇠도 없다. 외로움에 지친 그는 자신과 대화를 하거나 혼자 술래잡기를 한다. 바깥사람들은 그를 무서운 신으로 여기고 매년 아홉 명의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아스테리온이 달려 나가면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죽어버린다. 문은 모두 열려 있는데도 ‘미로에서 괴물을 만났으니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제물이 말한다. “언젠가 당신의 구원자가 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아스테리온은 자신을 고독에서 구해줄 구원자를 기다린다. 나중에 영웅 테세우스가 그를 죽이기 위해 미로에 들어온다. 아스테리온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구원자에게 목숨을 내놓는다.
보르헤스는 모두가 두려워했던 괴물의 마음에 들어간다. 괴물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을 미로의 감옥에서 구해줄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괴물을 죽인 테세우스의 영웅담 신화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삶은 미로다. 문제는 닫힌 문이 없는데도 스스로를 족쇄에 걸어 놓고 미로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스테리온이 무서운 괴물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도 알량한 지식과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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