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때리고 접대부 불러 달라… 지방의회 의원들, 부패 무능 만천하에
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꾸고 ‘지방자치 안 할 권리’ 보장해야
주민이 주인 되는 진짜 자치 꽃필 것
이번에는 예천이다. 경북 예천군의원 9명이 해외출장을 갔다가 가이드의 얼굴을 폭행하고 접대부를 불러 달라고 요구해 공분을 사고 있다. 예천 주민들은 “군의원을 잘못 뽑아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군의원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해당 의원들의 여행 보고서를 공무원이 대필하는 모습까지 발각되었다.
예천뿐이랴. 비슷한 시점 인천 계양구 의원들은 호주와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동굴 관광을 하는 이유를 묻자 “막말로 인천에 동굴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이쯤 되면 지방의원이라는 단어 앞에는 ‘무능하고 부패한’이라는 수식어가 아예 고정될 듯하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방의원 여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비리를 저지른 의원들에게 사퇴하라고 시위를 벌이는 주민들이 새로운 군의원이 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킨 지 28년이 되는 지금 근원적 문제를 직시하고 보완을 해야 한다. 수많은 국민이 지방의원의 무능과 비리에 신물을 내고 자치제도 자체에 무용론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치(自治)와 분권은 살리되 무능과 부패는 차단하는 일이다. 자치는 민주주의와 동의어이고 분권은 열악한 지역을 회생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치를 위한 결정권과 통제권을 주민들에게 더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두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먼저 획일적으로 강요된 지방의원 유급제를 주민이 원하는 지역에선 무급제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지방선거를 할 때 한 칸에 유급제 찬성 여부를 투표하게 하도록 하는 식이다. 과거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지방의원을 유급제로 바꾸니 ‘유(有)보수 불명예직’이 되고 말았다. ‘유급제가 젊고 일 잘하는 사람을 지방의회로 유인할 것’이라는 논리는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 주장은 지방의원과 수족들에게 일자리를 ‘선물’하려는 국회의원들의 말장난이었다.
나아가 지방자치를 원하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지방자치를 안 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중앙에서 획일적, 하향식으로 강요된 자치는 스스로 온전하게 싹을 틔우지 못한다. 지방선거가 곧 지방자치와 같은 말은 아니다. 그리고 주민의 공동체적 어울림과 자치에 대한 열망이 전제되지 않는 자치제도는 독선과 무능 그리고 부패로 귀결될 뿐이다.
나도 한 번은 지방의원을 하고 싶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지방자치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우리 동네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처럼 유급제와 겸직금지 제도를 강력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는 지금의 생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더구나 정당 공천이라는 합법적 진입장벽은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한다. 대학원 제자 중 한 명은 지방의원으로 일해보고 싶다며 휴학을 한 적이 있다. 현직 약사였던 그는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교수님, 대학을 나온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이 못 돼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100세 시대다. 유능한 경영자나 공직자, 전문가들이 은퇴 후 자원봉사처럼 지방의원으로 기여할 길을 터주어야 한다. 그러면 한 해 2000억 원가량의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자치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장관이 진심으로 적폐청산과 개혁을 원한다면 말단 정치조직의 지지자들에게 일자리를 선사하는 차원의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을 위한 부조리 개혁과 모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자치는 자발적 참여에서 싹튼다. 그 참여는 공동체적 어울림에서 시작한다. 언제쯤 우리는 주민들이 진짜 주인이 되고 웃음꽃을 피우는 동네자치를 꽃피울 수 있을까. 그 공동체적 어울림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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