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석준]주변 ‘마음이 아픈 이들’을 주목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03시 00분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된 집단이 있다. ‘정신 장애인’으로 불리는 ‘마음 장애인’들이다.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는 마음 장애인 수는 10만 명에 불과하다. 전체 250만 등록 장애인 중 25분의 1 수준이다.

‘불과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문제의 크기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조현병만 하더라도 평생 유병률은 약 1% 수준. 일평생 살아가면서 조현병에 걸릴 확률이 100명 가운데 1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현병 유병 환자만 한국에 최소 50만 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등록 마음 장애인은 10만 명밖에 없다. 나머지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다른 통계자료를 보자. 등록된 마음 장애인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4.5%에 불과하다. 전체 장애인의 4대 보험 가입률은 63% 수준이다. 고용의 질을 떠나 직업을 갖고 있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중증 마음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다. 범죄 발생률이 일반인에 비해 마음 장애인이 결코 많지 않다는 통계를 아무리 들이대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편견이 지속되면서 국민의 마음 문이 굳게 닫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장애는 조기에 발견해 제대로 된 치료를 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본인과 가족들도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숨기려 하고, 우리 사회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적기의 치료시기를 드물지 않게 놓친다. 이에 증증 정신질환자가 더 많아지게 되고, 뒤늦게 입원을 하게 돼 재원 기간도 길어지며, 퇴원 후 머물 공간도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마음 장애인들의 소재가 불분명한 이유는 고용과 주거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입원 치료 후 집단생활시설(group home)이 제공되고 직업재활 등을 통해 적절한 일자리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마음 장애인에게는 일할 공간이 없다.

국민의 인식 개선과 함께 중앙정부의 정신질환 관련 예산도 더 확충되어야 한다. 2018년 보건복지부 보건예산 가운데 정신질환 관련 예산은 1.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이 약 5%다. 우리나라도 OECD 평균 수준까지 예산을 확보하고 관련 사업을 펼칠 때가 됐다.

필자는 국민들의 마음 장애인에 대한 편견 개선과 사회통합을 위해 지난해 전국을 순회하며 정신건강 포럼을 개최해 왔는데 포럼 중간 마주한 한 구호가 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정상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정신질환자에 의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고(故) 임세원 교수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도 고인의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환경과 함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임 교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올해는 안전한 진료환경 속에서 마음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조현병#중증정신질환#정신질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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