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정치권 출신 A 씨가 ○○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는 장관과도 막역했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관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인사수석실에서 먼저 OK가 떨어져야 장관이 절차에 따라 추천하고 임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흔히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불리는 자리가 있다.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여러 정치권 인사도 인사수석을 원래부터 청와대에 있던 자리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자리는 ‘청와대의 뜻’으로 결정되는 현실이 만들어 낸 착시 현상이다.
인사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처음 생겼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전까지 민정수석이 독점한 인사에 대한 추천·검증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인사수석은 주류 사회 교체의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장관의 인사권은 위축됐고 각 부처는 물론 공기업, 정부 투자기관 및 출연기관 중간 간부 인사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입김은 더욱 거세졌다.
이명박(MB) 정부 초기 실세였던 정두언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직후 MB에게 이 같은 문제점을 설명하며 인사수석실 폐지를 건의했다. MB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MB는 “인사수석을 없애면 이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좌파세력들은 어떻게 척결하느냐”는 취지로 답했다. MB는 인사수석을 없애는 대신 대통령실장(현 비서실장) 직속으로 인사비서관을 두었다. 그러나 인사비서관의 역할과 영향력은 이전 정부 인사수석과 별 차이가 없었다.
현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대표적 비판 중 하나는 “청와대만 보인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각 부처 인사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을 일일이 챙기면서 장관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서 일하는 인사수석비서관실의 행정관은 대통령의 철학과 지침에 대해 추천권자인 육군참모총장과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은 압권이었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사수석실 행정관은 참모총장과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강변한 건 지나쳤다. 청와대가 장관 총장 청장 등 각 부처 인사권자를 희화화시키면 그들의 부처 장악력은 현격히 떨어진다. 이들이 바지사장으로 전락하면 관료들은 청와대 눈치만 살피게 되고, 복지부동이 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청와대 정부’는 짧은 임기 안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으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청와대 정부’일 수만은 없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2015년 2월,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를 찾은 이완구 총리에게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장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몰리자 당도, 정부도 함께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3년 차다. 개각설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국회로 돌아가고 관료 또는 전문가 출신 장관이 배치될 것이다. 내각의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장관이 정책의 주체로 소신을 갖고 일하려면 최소한의 인사권은 필수다. 차관 등 고위직 인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과장 또는 산하 단체 인사권 정도는 과감하게 각 부처 장관에게 넘겨야 한다. 장관이 사명감을 갖고 휘하 공무원과 신나게 일하도록 해야 규제혁신도, 개혁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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