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위기는 국제 변화와 맞물려
문재인 정권 출범 이전부터 이미 파탄…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토대 필요해한국,日받아들일 수 있는 안 제시하고 역사문제 최종적으로 해결할수 있어야
한일관계는 심각한 ‘체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한국 진보정권의 탄생과 연계해 문재인 대통령의 ‘폭주’에 따른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위기는 지금 시작한 것도, 진보정권이기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다.
나는 일본의 전문지 ‘국제문제’ 2012년 9월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판결이나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개인보상’ 판결을 언급하며 한일관계의 체제위기를 경고한 바 있다. 국교정상화 과정과 직접 관계된다는 점에서 “이를 어정쩡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제3자에게 중재를 의뢰하거나 쌍방이 상처받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철저하게 논쟁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1965년 한일조약 및 제 협정 체결 당시 양국 정부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쳐두거나 애매하게 하거나 심지어 강제로 밀어붙이거나 했다. 그중 으뜸이 식민 지배 합법·불법성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그로부터 70여 년 뒤 양국 정부가 외교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을 한국 사법부가 법률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고로 이는 ‘사법의 독주’라 할 수 있다.
왜 사법부가 ‘독주’를 시작했는지는 명백하지 않지만 필자는 이를 뒤늦게 찾아온 ‘사법의 민주화’ 때문이 아닐까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은 ‘권력의 시녀’라 야유받던 사법부의 ‘독립선언’이 된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측과 타협했고 징용공 재판에 브레이크를 걸어 방해한 것이 된다.
다만 한일관계의 체제위기를 한국 내정의 관점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배경에는 2010년 전후에 시작한 국제시스템의 변동이 있었다. 그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했다. ‘글로벌 한국’을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기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를 발견했다. 문제가 많은 한일관계보다 한중관계에 한국의 미래를 맡기려 한 듯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우선시한 박 전 대통령은 한국의 중국 접근을 가속화해 그것을 북한 정책만이 아니라 대일 정책의 지렛대로 이용했다. 일본 측에는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이 공동 투쟁하는 것처럼 보였다. 톈안먼 위에서 ‘대일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냉전의 맹우’ 모습에서 많은 일본인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요컨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한일관계는 이미 파탄한 것이다. 반성을 담아 술회한다면 우리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과대평가했다. 합의 후 쌍방의 대응에서 보였듯 양국 정부에 그것은 본의가 아니었고 편의적 합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문재인 정권의 결정에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들의 70% 이상이 현금 지급을 받았다는 실적 때문만은 아니다. 이쪽에서는 위안부를 위한 재단을 해산하고 저쪽에서는 징용 피해자를 위한 새로운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하면 일본 정부와 국민의 이해를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묘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최근 한국 구축함과 일본 초계기의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 처리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처절하게 논쟁한다고 뭔가를 얻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한일관계의 토대다.
현재 명확한 것은 첫째, 낡은 틀을 포기한 한국 측이 새로운 틀의 원안(原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며 둘째, 한국의 안은 일방적 조치가 아니라 일본 측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셋째, 그것은 미래지향적이고 역사문제를 일괄적이고도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미 징용 피해자를 위해 한국 기업(포스코 등)이 공탁한 자금이 있다. 한국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해산하는 ‘화해·치유재단’을 토대로 이 자금 등을 통합해 청소년 교류사업을 포함한 미래지향적 사업내용으로 확대 재편한 ‘화해·미래재단’을 발족하면 어떨까. 그 뒤 일본 기업들에 참가할 것과 원고와의 화해를 촉구하는 것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한일 양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줬으면 한다. 혼미에 빠진 한일관계를 타개하고 대통령의 리더십을 확립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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