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생채기를 메우지 말라… ‘비움의 미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8일 03시 00분


<6> 뉴욕 그라운드 제로

그림 이중원 교수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미국 뉴욕에서 ‘핫’한 지역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다. 시는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WTC)’ 자리에 15년을 투자해 천지개벽을 이뤘다. 16ac(에이커·약 6만4750m²)의 땅 중앙에는 쌍둥이 빌딩을 대신해 인공분수 2개가 있고, 분수 주변에는 새로 지은 마천루들이 도열해 있다. 유럽 유명 건축가 그룹 스뇌헤타의 ‘9·11기념박물관’과 건축가 칼라트라바의 ‘백색 비둘기 모양의 철로 역사’는 그라운드 제로 심포니의 일부일 따름이다. 그라운드 제로는 ‘미국 마비’를 노린 기획 테러를 ‘미국 건재’로 돌려놓았다.

WTC는 20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당시 체이스 맨해튼 은행 회장)의 프로젝트였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신도심(미드 타운)으로 이사를 가자 구도심(로어 맨해튼)의 부동산 가치가 하락했다. 데이비드는 록펠러 가문이 많이 소유한 구도심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고자 뉴욕 주지사였던 형 넬슨 록펠러와 WTC를 기획했다. 건축가로는 시애틀 토박이이자 일본계 미국인인 미노루 야마사키를 선임했다.

야마사키는 1912년 시애틀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애틀 워싱턴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야마사키는 학비를 마련하고자 방학마다 알래스카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 졸업 후 그는 기회를 찾아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디자인한 건축회사 ‘슈리브, 램 앤드 하몬’에 취업했다.

전쟁에 승리하자 미국에는 전례 없는 건설 붐이 일었다. 디트로이트 건축회사 ‘스미스, 힌치맨 앤드 그릴스’에서 야마사키에게 러브콜을 했고 야마사키는 이를 수락했다. 회사 내 지위와 연봉은 올랐지만 미국 중부의 인종차별은 동부보다 심했다. 회사는 간판 디자이너인 야마사키를 건축주 미팅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야마사키는 1949년 회사 동료 두 명과 독립했다. 195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격의 미국주택공사는 새로운 뉴딜 정책으로 공공 임대 아파트를 발주했다. 이때 수주한 프로젝트가 건축 역사에서 그 유명한 ‘프루잇-아이고’ 아파트다.

하지만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이 아파트는 1972년 철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가 낡아 유지 보수가 필요한데,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돈을 쏟아붓느라 프루잇-아이고를 방치했던 것. 노후 아파트는 결국 우범지대로 전락해 철거하기로 결정됐다. 모더니즘에 반기를 든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 찰스 젱크스는 저서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언어’(1977년)에서 이 아파트 단지의 폭파일인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을 모더니즘 사망일로 진단했다. 젱크스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야마사키는 모더니즘 건축을 끝내버린 장본인으로 낙인찍혔다.

그럼에도 그는 세인트루이스 공항, 시애틀 엑스포 과학관,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IBM 타워와 레이니어 은행 타워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됐다. WTC 건축가로의 선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마사키는 WTC를 준공한 뒤 1986년에 타계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로 WTC는 도마에 올랐고, 야마사키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WTC와 로어 맨해튼에는 먼지가 쌓여 갔다.

2001년 테러 비행기는 먼저 북쪽 타워를 강타했고, 그 다음 남쪽 타워를 때렸다. 야마사키는 시애틀 구조 전문가 존 스킬링과 협업해 시애틀 마천루에서 실험한 특수 구조로 타워를 세웠다. 이 특수 구조 덕에 남쪽 타워는 강타 후 56분 만에 주저앉았고, 북쪽 타워는 102분 만에 주저앉았다. 약 1만7000명이 대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돼 줬다.

그라운드 제로 마스터 플래닝 국제 공모전에 응모했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2003년 폐허 현장에서 WTC의 기초벽이 건재함을 보고 일갈했다. “비록 민주주의를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아직 민주주의의 기초는 건재하다.” 유가족들은 그의 연설에 울며 환호했다.

WTC는 무너졌지만 2개의 분수로 부활한다. 분수는 WTC 지하 기초벽 일곽으로 만들었다. 분수 주변 흑색 돌에는 금색 글씨로 죽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음각되어 있다. 분수는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은 성역이 된다. 덕분에 죽었던 야마사키의 이름도 같이 부활한다.

폐허를 예술로 승화시킨 분수는 그래서 ‘집단 트라우마’를 ‘집단 힐링’으로 되돌린 부재의 미학이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랜드마크 건축이 됐다. 소비주의로 소란스러운 우리 도시에도 필요한 ‘건축 이상의 건축’이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그라운드 제로#미국 뉴욕#쌍둥이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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