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단어를 혼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쉬운 단어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쓰이는가를 알아야 그 단어를 진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을 때 어떻게 하는가. 사전에서 단어 자체의 의미만을 보는 일은 그리 유용하지 않다. 사전은 ‘가장 기본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그래서 일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예문이 그 어려움을 도와준다. 그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여주므로.
좀 더 복잡한 ‘달이다’를 먼저 살펴보자. ‘달이다’는 사전에 ‘액체 따위를 끓여서 진하게 만들다’라고 쓰여 있다. 대표적인 액체 몇 가지를 생각해 ‘달이다’와 연결해 보자.
●물을 달이다(×) ●우유를 달이다(×) ●음료수를 달이다(×)
사전적 의미를 보니 ‘달이다’와 ‘끓이다’의 차이는 ‘진하게 만들다’에 있을 듯하다. ‘물’은 끓여도 진해지지 않으니 이 단어가 ‘달이다’와 연결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유’나 ‘음료수’ 중에는 끓이면 진해지는 것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말은 쓰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연유를 알기 위해 ‘달이다’가 놓인 예문을 더 보자.
‘간장, 보약, 차’는 끓이면 진해지는 것들이다. ‘달이다’와 함께 놓이는 대표적 단어들이다. 그런데 ‘간장’이나 ‘차’는 ‘끓이다’와도 제법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약’의 경우 ‘끓이다’와 함께 쓰는 것이 가능할 듯은 한데 왠지 좀 어색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를 달이다’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단어는 상황 안에서 만들어지며 그 상황과 함께 존재한다. ‘달이다’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간장을 달이고, 보약을 달이는’ 상황을 이해해야 단어의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요즈음 일상에서 ‘달이다’를 사용할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미 우리의 아이들은 ‘간장을 달이다’ ‘차를 달이다’와 같은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상황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어의 힘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약해진 단어는 점점 범위가 좁아져 몇몇 단어에 한정되어 쓰이게 마련이다. ‘달이다’가 ‘간장, 보약’ 등의 단어로 한정되어 놓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우유’나 ‘음료수’가 ‘달이다’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우유’나 ‘음료수’를 달일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어쩌다 이들을 달이는 요리법을 활용한다 할지라도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우리가 더 자주 쓰는 ‘끓이다’를 활용하는 것이 더 쉽다.
우리는 단어를 익힐 때 무엇과 함께 나타나는가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그것이 단어를 맥락 속에서 익히는 방식이다. ‘달이다’가 어떤 단어와 어울리는가를 알고 그 단어와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 맥락 안에서 단어를 사용하여야 정확한 의사 전달이 가능해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