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그림이 벽에 새로 걸리거나 내려지는 건 흔한 일상이다. 그런데 지난해 1월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은 전시된 그림 하나 치웠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120년 이상 걸려 있던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을 의도적으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그림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힐라스와 님프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힐라스는 헤라클레스가 사랑한 미소년 왕자다. 그림은 힐라스의 미모에 반한 님프들이 물을 뜨러 온 그를 유혹해 연못 속으로 잡아끌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도 여러 명이서. 한 명은 그의 팔을, 다른 한 명은 그의 옷을 당기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진주를 보여주며 유혹하고 있다. 힐라스는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님프들에게 이끌려 목숨을 잃는다.
고대 신화가 주제인 인기 있는 명화이긴 하나 사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여성이 갖는 성적 욕망의 위험성과 남자를 파멸로 이르게 하는 ‘팜파탈’ 여성에 대한 경고로 해석돼 왔다. 맨체스터 미술관은 이 그림이 “여성의 몸을 수동적인 장식의 형태 혹은 팜파탈로 보여 준다”며 “공공 미술관에서 여전히 이런 그림이 전시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기 위해 철수했다”고 밝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 운동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대신 그림을 떼어낸 자리엔 관객의 의견을 묻는 포스트잇을 준비했다.
관객의 반응은 어땠을까. 미술관의 예상과 달리 당장 그림을 되돌려 놓으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정치적 검열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결국 1주일 만에 그림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120년 전의 그림을 오늘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게 과연 옳을까. 사실 이 그림은 제작된 그해에 맨체스터 미술관이 구입했고, 이듬해 유서 깊은 영국 왕립아카데미의 여름 전시에도 초대됐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한다면 전 세계 미술관에서 퇴출당할 명화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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