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수준의 봉급을 받는 직장인이 서울에 있는 집 한 채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3.4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게 서울 집값의 현주소다. 근로자 소득을 1∼5분위로 나눴을 때 3분위 평균소득 대비 평균 집값 비율(PIR)을 보면 서울이 13.4배이고 미국 뉴욕은 5.7배, 일본 도쿄는 4.8배로 서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집값이 폭등한 중국 베이징이 17.1배로 서울보다 높았다. 물론 뉴욕과 도쿄는 우리의 수도권 개념인 뉴욕주, 도쿄도의 수치여서 직접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소득과 비교했을 때 서울의 집값이 너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9월 기준으로 2014년에는 8.8배였던 소득 대비 집값이 2017년에는 11.2배, 작년 13.4배로 점점 더 올라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을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13년 넘게 걸린다면 실제로는 20년 훨씬 넘게 저축을 해야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집 한 채 사기 위해 거의 평생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사회가 정상일 수는 없다. 집을 갖고 있느냐 혹은 어느 동네에 얼마짜리 집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져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주택 문제는 사회적 위화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집 사는 데 돈을 쏟다 보니 전체 가계 자산의 70% 가까이가 집에 쏠려 있고,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 불리는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집을 장만 못 해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보니 평균 3∼4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데 이 같은 이사 빈도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생활의 터전인 주거 문제가 불안하면 사회 전체가 불안할 수밖에 없고, 높은 집값은 국가 경제로도 중대한 불안 요인이 된다.
특히 청년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내 집 마련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 장기적인 인구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구 구조나 주택 사정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서는 근로자들이 5년 안팎의 소득을 모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집값을 유지하는 것을 주택 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우리도 성실히 일하는 서민과 청년들이 이런 최소한의 기대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현 정부의 주택 정책은 주로 세금을 동원해 서울 강남 주택의 집값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위화감 해소 차원에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안정에 주택 정책의 관심과 역량을 집중해 사회 갈등을 줄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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