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기정]뚱뚱해진 메기라도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9일 03시 00분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인터넷은행은 혁신적일까. 지난주 열린 인터넷은행 인가심사 설명회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른바 대어급 후보들이 불참했다. 네이버는 동남아 사업에 더 관심이 있다며 나오지 않았고, 인터파크는 참석은 했지만 은행업 진출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두 회사는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의 뒤를 이은 ‘금융업의 메기’ 유력 주자였다.

인터넷은행은 문재인 대통령의 혁신성장 1호 작품이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은 19세기 영국의 ‘적기조례’까지 거론하며 인터넷은행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예상대로 경실련, 참여연대, 민변, 민노총이 거세게 반발했다.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같은 ‘우클릭 행보’를 시작하자 지지를 거둬들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내상을 각오하고 인터넷은행법을 관철했다. 그런데 법률 시행 일주일 만에 열린 설명회는 동네잔치 수준이 돼 버렸다.

표면적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지금도 은행업 진출 전에 있었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인터넷은행을 세우는 순간 제조·서비스업과는 비교가 안 되게 엄격한 은행법을 적용받는 점도 신규 참여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은행업은 원래 규제산업이다. 정부가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통제해주는 대신 높은 규율을 요구한다. 외국의 인터넷은행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이런 틀 안에 있다.

흥행 실패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2년 전 영업을 시작한 카카오뱅크는 자산을 11조 원으로 불렸다. 그동안 주주들은 자본금으로 1조3000억 원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흑자를 못 내고 있다(지난해 3분기 기준). 일반 기업이 선뜻 발을 들여놓기 만만치 않은 사업이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사업모델이 기존 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개인 대출 위주로 영업하되 거래 플랫폼을 오프라인에서 모바일로 옮긴 정도다. 인터넷은행법의 취지 중 하나인 저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도 아직까지 전체 대출의 20% 이하다.

시장 규모도 생각보다 작다. 카카오뱅크 가입자는 이미 700만 명을 넘어섰다. 케이뱅크도 자본금을 확충하면 조만간 공격적 영업에 나설 것이다. 지금으로선 신규 인터넷은행의 입지가 좁아 보인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인터넷은행 한두 개면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업 수조’에 넣어둔 메기가 기존 환경에 익숙해진 ‘살찐 메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까지를 한계로 보면 인터넷은행은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직원 중 인터넷정보통신(ICT) 인력은 40∼50%다. 그중에서도 핵심 인력은 은행 특유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적용받지 않는다. 이들은 인터넷뱅크가 추구하는 ‘극강의 편리함’을 위해 비대면 계좌 개설이나 핀테크는 물론 통신정보 빅데이터를 이용한 금융거래 무경력자의 신용등급 산출처럼 다른 산업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출현이 규제 혁신의 각론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은행업 진입의 문턱을 낮추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금융규제 자체를 조금씩 손보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산업자본의 은행업 영위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깨지고 있다는 점도 혁신의 성과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이제 막, 어렵게 첫발을 뗐다. 제2, 제3의 혁신사례를 계속 배출해야 한다. 혁신기업이 뚱뚱해진 메기가 되더라도 지금은 판을 벌여 놓는 게 중요하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인터넷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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