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닐 줄 알았는데…그 어려운 걸 어찌 33년 하셨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9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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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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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중요한 가족행사로 챙겨왔다. 두 분이 만나 결혼하셨기에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으니 생신만큼 중요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데이트 하시라며 두 분을 밖으로 내몰고서는 한 명은 창문에 붙어 망을 보고, 두 명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풍선을 벽에 붙이고 과자 상을 차렸다. 잠시 뒤 돌아오신 부모님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연례행사에 예외 없이 감동하셨다. 알면서도 속는 체하고, 속는 체하시는 걸 알면서도 속이는 가슴 따뜻한 날들이었다.

얼마 전 두 분은 결혼 33주년을 맞이하셨다. 세 딸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품을 떠난 지 오래고, 그 중 둘은 어느덧 또 다른 가정을 꾸렸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메시지도 보내고 함께 모은 용돈도 드려보지만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당일 아침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사랑합니다’ 팻말이 꽂혀있는 케이크 사진이었다. 아빠의 귀여운 ‘서프라이즈’에 세 딸의 가슴도 뭉클했다.

별 거 아닐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 ‘별 거’인 것들이 종종 있다. ‘이 어려운 걸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지?’하는 것들. 내게 별 거는 처음엔 ‘기타’였다. 풍류 좀 즐긴다 하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곧잘 치길래 쉽게 생각했는데, 빠르게 코드를 바꿔가며 주법까지 유지하는 것은 퍽 버거운 일이었다. 그 다음은 ‘직장 생활’이었다. 신입사원 시절 고됐던 어느 날의 퇴근 길, 나는 3년도 채 안 하고도 이렇게 지치는데 아빠는 어떻게 30년을 넘게 하셨을까 새삼 먹먹한 마음이 일어 지하철에서 혼자 엉엉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결혼’이었다. 어느덧 결혼 3주년을 맞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고 살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직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어려운 걸 엄마, 아빠는 어떻게 33년을 하셨을까. 모르긴 몰라도 두 분 또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리라. 부모님의 맞잡은 두 손이 새삼 더 위대해 보이는 까닭이다.

어릴 땐 슈퍼맨 같던 부모님이 머리가 커 가면서 점점 안쓰럽더니 사회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막상 해 보니 ‘별 거’인 생의 문턱을 하나씩 넘어가면서 다시 태산처럼 커 보인다. 아니, 사실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은 세상살이 자체가 ‘별 거’라는 것인데 이 어려운 걸 엄마는 어떻게 버티고 아빠는 또 어떻게 견디셨을까. 예전엔 흘려듣기만 했던 부모님의 조언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와 박힌다. 오래 전부터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들의 의미도 이제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본다. “아빤 우리 딸들이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하는 집을 만드는 게 꿈이야.” 이 짧은 말 한 마디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이미 집을 떠난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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