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평양이 심상치 않다. 자고 나면 집값이 뚝뚝 떨어진다. 벌써 몇 달 전 고점 대비 반값, 많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연상케 해, 북한판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작년 8월 북한의 3대 돈줄인 석탄·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을 꽁꽁 틀어막는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시작된 뒤 1년 정도는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핫한 지역으로 부상하던 평양역 뒤편 평천구역의 150m²짜리 새 아파트의 호가는 1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골조만 세우고 분양해도 순식간에 팔리던 아파트가 반년 만에 실내마감까지 끝내고도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의 주원인은 대북 제재다. 수출이 꽁꽁 막히자 달러도 씨가 말랐다. 북한 권력층의 최대 돈줄은 수출입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해 챙기는 달러다. 가령 석탄의 국제 시세가 t당 100달러면 수출시 장부에 70달러로 적어 보고하고 나머지 30달러를 숨기는 식이다. 이를 통해 매년 국가 무역에서 증발한 수십억 달러가 평양의 부동산과 사치품 구매에 쓰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에 새 아파트가 많이 공급된 것도 가격 폭락을 부추겼다. 최근 수천 채씩 분양된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는 새 발의 피다. 돈주들이 투자한 소규모 건축물이나 재개발 등을 통해 지어진 아파트는 훨씬 많다. 이처럼 공급은 늘어났는데 돈줄이 꽉 막히니 가격이 폭락하는 건 당연하다.
2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평양 부동산은 한순간에 10년 이상의 상승 폭을 반납했다. 이 정도면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돈주’들이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헐값에 매물들을 사들일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없다.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돈주는 곧 권력을 가진 간부들이다.
요새 한국도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 절벽으로 시끄럽다. 만약 평양처럼 서울 집값이 반값이 된다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여론이 들끓고, 광화문은 시위대로 넘쳐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평양은 잠잠하다. 지방의 충격도 클 텐데, 겉으론 평온해 보인다. 마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초기 수십만 명이 굶어죽어도 밖에서 몰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내가 살다 온 곳임에도 “북한이 저렇게 무서운 곳이었구나”를 새삼 느낀다.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이 집값 폭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북한 사람들도 인생 최대의 목표가 집 한 채 마련인 경우가 많다. 다만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질 않을 뿐이다.
여기에다 북한 당국이 새해가 밝자마자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앤다고 간부들을 죄고 있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이번 조치는 뇌물 받는 간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북한에서 뇌물은 곧 월급이고, 승진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권력으로 달러와 부동산을 축적해 온 간부들 사이에서 “핵무기 집착으로 경제 망치고, 왜 우리 옆구리를 차냐”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나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뇌물 근절 캠페인은 결과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수밖에 없다. 집값 폭락에 비례해 등을 돌리는 곳이 바로 북한 체제 수호의 핵심 보루인 평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간부들의 주머니에 달러가 채워져야만 한다.
문제는 북한이 돈을 꿔올 만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엔이 제재를 풀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반드시 막힌 돈줄을 풀겠다”고 내부에 던진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급격히 악화되는 민심을 하루빨리 달래야 하는 김정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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