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양궁 지도자는 말했다. “집안 사정상 합숙을 통해 숙식을 해결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최고가 되기 위해 합숙을 원하는 선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합숙 폐지는 이들로부터 꿈과 희망을 빼앗는 일”이라고.
정부는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22·한국체대)의 용기 있는 성폭행 피해 폭로 이후 엘리트 스포츠를 혁신해 전반적인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했다. 대표적인 대책 중 하나가 합숙 훈련 폐지 또는 축소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회도 이달 중순 빙상계 폭력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해 합숙 훈련을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폐쇄적인 합숙 훈련 기간에 각종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정책이 나온 것은 그동안 성적 지상주의를 추구해온 엘리트 체육의 폐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자정 능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
하지만 합숙 폐지 또는 축소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한 빙상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합숙을 없앤다고 치자. 그러면 부유한 집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팀을 꾸려 운동 환경이 좋은 해외로 합숙 전지훈련을 떠날 것이다. 또 다른 관리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합숙 폐지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만약 합숙을 폐지하기로 한다면 그를 상쇄할 만한 세부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 내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합숙이 폐지되면 한국 대표팀의 성적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대표팀 지도자는 “선수층이 얇은 우리나라의 경우 태릉선수촌(현 진천선수촌)으로 대표되는 합숙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팀이나 종목을 망가뜨리는 건 한순간이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정말 어렵다”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합숙 훈련의 장점은 단기간의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경기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합숙 훈련을 외국에서도 따라 하고 있다. 합숙 훈련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한국 유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유승민 위원은 “일각에서는 메달이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내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우린 대체 뭐 했느냐’는 비난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메달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 성적은 중요 할 수 밖에 없다. 체육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며 엘리트 체육인들과의 공청회를 요청했다.
정부가 지향하는 스포츠 선진국은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함께 강한 나라여야 한다.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합숙 폐지’를 넘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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