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88〉강추위의 반대말은 약추위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강추위’의 반대말은 뭘까? 이 질문 자체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강추위’의 반대말을 ‘약추위(×)’라 생각할까 봐 화낼 수 있다. ‘강추위’의 ‘강’은 한자(强·강)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강추위’는 순우리말로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라는 의미다.

누군가는 거꾸로 ‘약추위(×)’를 떠올리면서 문제 될 것도 없는 것을 문제 삼으려 하는 학자연한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다. ‘강추위’의 ‘강(强)’을 한자로 보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는 모두 이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맨 처음의 질문부터 풀어 보자. ‘강추위’의 반대말은 ‘무더위’다.

●반의 관계
강↔무
추위↔더위

‘강추위’는 ‘강+추위’로 구성되었으니 그 반대말 역시 같은 구조를 가져야 제대로 된 반의 관계가 생긴다. ‘추위’와 ‘더위’의 관계는 쉽다. 그 말 앞에 붙은 ‘강’과 ‘무’의 관계를 풀어야 할 차례다. ‘무’는 ‘물’에서 온 말이다. ‘물’에서 ‘ㄹ’이 없어진 것은 언어의 역사와 관련된다. 우리 주변에서 같은 이유로 ‘ㄹ’이 없어진 말들을 만날 수 있다.

●무소(물+소), 마소(말+소), 소나무(솔+나무),
여닫다(열+닫다), 바느질(바늘+질)

‘무더위’의 ‘무’가 ‘물기 많은’의 의미라면 그 반대말인 ‘강’에는 ‘물기 없는’이라는 의미가 들었음이 분명하다. ‘무’가 고유어로부터 왔듯 ‘강’ 역시 고유어에서 왔을 것이다. ‘강’과 ‘무’의 의미를 풀어보니 ‘무더위’와 ‘강추위’에는 우리의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와 한랭건조한 겨울 날씨가 그대로 들었다. 그래서 ‘강추위’는 반의 관계에서 유추한 대로 ‘물기 없는 추위’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전국 맑지만 강추위 지속(최근 신문기사 제목)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습기가 많은 데도 ‘강추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강추위 속에서 눈을 그대로 맞던 ○○○ 씨는
(최근 뉴스 속 예문)

결국 사전에서조차 이런 경향을 받아들여 ‘강추위’와는 다른 표제어로 ‘강(强)추위’를 사전에 넣고 ‘눈이 오고 매운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로 풀이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우리는 이미 ‘강추위’ 안에 든 ‘강’이 어디서 왔는가를 알지 못한다. 반면 ‘강(强)-’은 다른 말 앞에 붙어 ‘매우 센, 호된’의 의미를 덧붙이는 말로 살아 있다. 그래서 앞의 ‘강’을 뒤의 ‘강(强)’으로 혼동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급기야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 것이다. 말의 의미는 때로 이런 방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맥락에서 이 단어를 쓰고 있는가이다. 단어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은 그 단어를 쓰는 맥락을 보여준다. 사전 속에 표제어 두 개라는 사실보다 맥락을 통해 발견하는 의미가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우리가 더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의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제대로 읽어야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강추위#약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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