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15〉행운과 평화 깃든 설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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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모두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셨나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익숙하시죠. 동요가 만들어진 1924년은 일제강점기였기에 ‘우리 우리 설날은’ 일본과 다른 음력설을 뜻하기도 하고 음력설을 없앴던 일제에 대한 은유적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설날은 순우리말로 새로운 것이 ‘낯설다’라는 의미도, 새로운 것을 ‘세운다’는 뜻도 있습니다. 연시(年始), 세수(歲首), 세초(歲初)라고도 하는데 모두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각오는 설날 아침에 입는 새로운 옷 ‘설빔’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손수 옷감을 짜고 바느질해 섣달그믐께에는 모든 준비를 마쳐야만 했죠. 일 년에 한두 번 새 옷을 입는다는 기대감이 클수록 행복도 컸을 겁니다. 아울러 조상님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예를 갖추는 데 설빔은 꼭 필요한 도구이자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염원이었지요.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의 설빔은 특히 화려했습니다. 남자아이는 오행의 기운과 연관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등 다섯 가지 오방색을 넣은 오방장(五方丈) 두루마기나 여러 가지 다양한 색동을 넣은 색동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여자아이는 노랑 저고리와 꽃분홍 치마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삼라만상의 아름답고 고운 색들을 모아 아이들의 출세와 혼인 등 앞날에 꽃길을 깔아준 셈이지요.

멀리 브라질에도 설빔이 있습니다. 12월 31일 밤에 시작해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헤베일룽(Reveillon)이라는 송년파티에 설빔을 입습니다. 입은 옷의 색상에 따라 흰색은 평화, 빨간색은 열정, 주황색은 금전적 성공, 노란색은 부의 축적, 초록색은 희망, 파란색은 영혼의 평안, 보라색은 영감과 안정, 핑크색은 행복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때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는 ‘마쿰바’라는 종교의식이 시작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그들의 토착종교 의식과 그리스도교의 의식을 혼합해 만든 이 의식을 행할 때는 평화를 의미하는 흰색 옷을 입습니다. 수십만 명이 흰색 옷을 입고 참여하는 브라질의 새해맞이 장관은 경건함 그 자체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호그머네이’ 축제에서도 설빔을 입습니다. 매년 12월 29일부터 1월 1일까지 새해를 맞이하며 나흘간 진행되는데요. 이 축제는 바이킹의 축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든버러의 중심지 조지 스트리트에서는 연극, 콘서트가 열리고 프린스 스트리트에서는 밴드들의 공연이 열려 끊임없이 즐길 거리를 제공합니다. 그중 가장 큰 이벤트는 그들의 조상인 바이킹 전사의 복장을 입고 횃불을 들며 거리 행진을 하는 것입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1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스코틀랜드는 설빔 덕에 크나큰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설빔은 지역과 민족과 종교가 달라도 미래에 대한 기대, 염원, 소망을 공통으로 담고 있습니다. 입는 이의 기쁨, 행복, 사랑도 담고 있고요. 때로는 종교적으로 승화돼 정신적인 평안을 주기도 하고, 상업적으로 활용돼 금전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역사가 오래될수록 내가 속한 사회, 집단, 가족의 소속감도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고요. 설빔을 입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아닌 듯합니다. 내년 설날에는 저도 설빔 하나 마련해 볼까 합니다. 혹시 아나요? 제게 어떤 행운이 찾아올지.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설날#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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