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러시아 명태와 남산 위의 저 야자나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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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
민족 대명절 설이 지났다. 예로부터 설이면 다양한 음식을 장만해 조상에게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친척들끼리 음식을 나누며 정을 돈독히 했다. 전통대로라면 설 전날 가족들이 모여 차례상을 준비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구매하거나,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완성되는 밀키트(간편 가정식)로 만들거나, 호텔 케이터링(음식 출장 서비스)으로 대체하는 등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이나 식자재의 출신지가 변했다는 것이다.

수도권 차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태전은 출신지가 바뀐 대표적 음식이다. 1970, 80년대 ‘국민 생선’이란 명칭이 어색하지 않았던 명태는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생선이 됐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러시아산 수입 명태가 국내산의 빈자리를 메웠기 때문이다. 명태가 국민 생선의 타이틀을 내주게 된 이유는 싹쓸이 어획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한반도 인근의 수온 상승이 꼽힌다. 특히 동해는 지구 해양 평균보다 약 1.5배 빠르게 수온이 상승하고 있다. 한대성 어종인 명태의 출신지가 바뀌고 있다.

홍동백서 중 ‘홍’에 해당하는 사과 역시 출신지가 바뀌었다. 사과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산, 영천, 경주 등 경북지역이 주산지다. 하지만 최근 이 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은 줄어든 반면에 정선, 영월, 양구 등 강원 산간 지역에서 늘어나며 시장에서 강원도 출신 사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차례상 주인공 과일인 단감 역시 경남 김해, 창원, 밀양에서 경북 포항, 영덕, 칠곡으로 재배 지역이 넓어졌다.

눈에 직접 보이는 식재료뿐 아니라 고추, 마늘, 파, 양파같이 우리 음식의 밑 재료도 출신지가 바뀌고 있다. 전남 무안이나 경남 창녕 등 남부 지방이 주산지인 양파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북과 충청은 물론이고 경기도 일원까지 생육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곳이 충남 당진이다. 충남 최북단에 위치한 당진은 전통적인 쌀농사 지역이었지만 양파 생육이 가능해지며 농가 수익 다변화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지구온난화가 한창 이슈로 떠오른 시절 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 애국가의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구절이 ‘남산 위의 저 야자나무’로 바뀌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설 차례상에서 보듯 우리는 식성 변화 없이 양파나 명태를 식탁에 올리고 있지만 모르는 사이 출신지가 남부지방에서 중부지방으로, 심지어 한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다. 당시의 우스갯소리가 이제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차례상의 출신지는 물론이고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조차 바꿔야 할지 모른다.

“집 나간 명태를 찾습니다.” 몇 년 전 정부가 명태를 찾기 위해 내건 현상금 포스터 문구다. 현재는 4년째 이어진 명태 인공 수정과 방류 사업을 통해 국산 명태 발견 소식이 하나둘 들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례로 평가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처럼 이제는 차례상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도 날씨 경영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
#지구온난화#기후 변화#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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