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90〉이 자리를 빌어? 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0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계속 변한다. 변화하는 언어의 단면을 잘라 만든 것이 규범이다. 변화 중인 언어를 반영하다 보니 규범을 만드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두 개의 단어를 표준어로 정하기도 하고, 이전에 표준어였던 것을 달리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단어들은 없애기도 하고, 새로 생긴 말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래서 맞춤법에 대한 불만도 많다. 맞춤법이 일관성 없게 변화된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규범이 바뀌면 더 복잡해진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서를 다루는 일을 해서 맞춤법에 민감하다면 더 화가 날 수도 있다.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항의할 만한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부분은 맞춤법이 달라지게 하는 힘은 우리가 쓰는 말에서 온다는 점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실제 언어이고, 규범은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이 자리를 (빌어/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괄호 속에 알맞은 말은 ‘빌려’다. 그런데 ‘빌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왜 그런가.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즈음 아버지가 부산 감옥소에 갇혀 버리자 빌어 살던 방
한 칸마저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게 된 우리 식구를 자기 움막에
같이 살게 해주었다. (‘노을’·김원일·1978년·문학과지성사)

1978년에 발행된 소설의 한 구절에는 같은 상황에 ‘빌어’를 쓰고 있다. 당시의 맞춤법은 그랬다. ‘빌다’와 ‘빌리다’를 영어의 ‘rent’와 ‘borrow’로 구분해 ‘빌다’는 남에게 얻는 것을, ‘빌리다’는 남에게 주는 것이라 규정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어떤가? 남에게 빌려오는 것과 빌려주는 것을 달리 쓰는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남의 것을 쓰는 것을 ‘빌다’라는 용어로 말하는 것은 어쩐지 구차하다.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자체가 이런 상황에서 ‘빌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맞춤법 수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쓰는 ‘빌다’는 아래처럼 정리된다. 이 말이 어떤 단어와 함께 쓰이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잘못을 빌다 → 사죄하다
●소원 성취를 빌다 → 기도하다
●양식을 빌다 → 구걸하다

언어 정책을 주도하는 국립국어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만도 엄청난 인원이 맞춤법에 대해 말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촉구하는 글도 올라오고, 어떤 말이 잘못 지정되었다는 견해도 올라온다. 우리가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혼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국어에 대해 갑론을박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언어는 변화하고 그 변화에 따라 맞춤법을 수정하는 방식에는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남이 말하는 것이 정확하게 같은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소통하며 산다. 그 소통이 올바르려면 우리의 언어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규범에 대한 이런 관심은 적어도 열린 마음으로 그 소통의 장에 접근한다는 증거이니 분명 기쁜 일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이 자리를 빌려#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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