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경성(현 서울)의 3·1 독립만세 운동 현장에는 독립선언서와 함께 또 다른 유인물이 뿌려졌다. ‘조선독립신문’이란 제호가 적힌 신문 형태였다. 이 신문은 3·1 독립선언의 취지와 함께 만세운동 상황을 알리는 목적이었고 당일 탑골공원에서 4000부가 배포됐다. 다음 날 신문 2호는 ‘근일(近日) 중에 가정부(假政府·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가대통령(임시대통령)선거를 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임시정부의 출범이 임박했음을 예고한 것이다. 3·1운동 지도부가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기획할 때부터 임정 주도의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청사진을 준비한 정황이다.
▷이런 물밑작업 덕분인지 실제 상하이 임정은 속도감 있게 구성됐다. 3·1운동 함성이 터진 지 한 달여 만인 4월 11일에 임정을 만들어 국호(대한민국)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채택했다.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배경엔 긴박한 외교전을 고려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해 1월 개막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김규식이 조선독립을 이슈화하기 위해선 ‘국가 대표’ 자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정이 수립되자 김규식은 현지에서 ‘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세계 각국 지도자와 언론을 상대로 조선독립을 호소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승국이었던 일본의 위세 때문에 김규식의 호소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었지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세계만방에 알린 신호탄이었다.
▷임정 수립 기념일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4월 11일이 아니라 임정을 선포한 4월 13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학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임정 국호와 임시헌장을 만든 4월 11일로 임정 수립일을 바꾸기로 했다. 1937년 이후 임정 수립 기념식을 매년 4월 11일에 했다는 기록 등도 이를 뒷받침했다.
▷청와대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임정 수립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임정의 첫걸음은 미약했지만 암울한 식민지 시대 민주공화제의 기틀을 세운 역사였다. 모처럼 모두가 하나 돼 임정 수립의 참뜻을 되새겨 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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