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도 없는 극한의 땅에 도착한 닐 암스트롱.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촬영 작업에 착수한다.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달 착륙 인증샷’을 위해 고온을 견딜 수 있고 우주장갑을 끼고도 조작이 가능한 기계식 카메라 ‘핫셀블라드’를 준비했다. 하지만 생사를 걸고 찍은 사진은 ‘성조기가 펄럭인다’, ‘그림자 길이와 방향이 다르다’, ‘별이 안 보인다’는 주장과 옛 소련과 우주경쟁을 벌이던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음모론 등에 시달렸다. 이미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는데도 사진 조작설은 50년간 이어졌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다. 음모론은 카메라 프레임 때문에 시작됐다. 카메라 옆과 뒤는 안 보이니 앞쪽만 달 표면처럼 무대를 꾸며 놓았다고 상상한 것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0주년이 되는 올해 중국은 달 뒷면에 탐사선 창어 4호를 착륙시켰다. NASA도 중국의 우주굴기를 인정했고 달 뒷면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고 한다. 창어 4호는 착륙 직후 360도 카메라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을 송신했고 중국은 이를 전 세계에 공개했다. 프레임 안에 한 부분만을 잘라서 보여준 사진이 아닌 360도를 병풍처럼 펼쳐 놓은…. 닐 암스트롱이 생존해 이 사진을 봤다면 “나 때는 왜 360도 카메라가 없었는가”라고 한탄했을지 모른다. 사진 때문에 음모론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화성과 달에 설치될 정도로 360도 영상은 일상화됐다. 포털 사이트 지도에 첨부된 로드뷰는 360도 사진이 친숙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동차 지붕 위에 동서남북과 상하를 동시에 찍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국의 길을 돌아다니며 수억 장의 사진을 찍어 이어 붙여 만든다. 지금은 360도 영상을 이용한 실시간 1인 방송까지 흔한 콘텐츠이다. 다음 달 5세대(5G) 통신기술이 상용화되면 360도 가상현실(VR) 콘텐츠는 ‘속도의 빅뱅’을 맞을 것이다. ‘360도 카메라-5G-VR 기기’ 순서대로 ‘생산-유통-소비’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데, 고화질 영상을 손쉽게 받을 수 있으니 가상현실이 더 실제 같을 수도 있겠다.
360도로 찍은 실사를 배경으로 한 VR 콘텐츠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6×9: a virtual experience of solitary confinement―360 video’라는 프로젝트가 몇 년 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더 가디언’이 감옥 1인실을 360도로 촬영해 보여준 뉴스 콘텐츠였다. 이용자는 마치 본인이 독방에 수용된 듯 침대 창틀 변기 등에 시선을 돌려본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설명을 듣거나 읽었던 기존의 방식과 큰 차이점은 보는 이들이 감옥 안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이 얼마나 좁고 열악한지 몰입이 가능했고 프로젝트 이후 수감자들의 인권이 사회 이슈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접속했다가 에펠탑이 있는 파리로 채널을 돌려서 다시 두산-롯데 경기가 펼쳐지는 잠실야구장으로 순간이동을 해본다. 슈퍼맨도 이렇게 빨리 이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 장소에 360도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실시간 중계를 하면 가능한 일이다. 가고 싶어도 못 갔던 곳을 간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마법의 창이 열리는 것이다.
200년 카메라 역사에서 360도 카메라는 기존의 프레임과는 전혀 다른 장치다. 앞으로 쓰임새도 기존 카메라와는 다른 행보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못 보았던 달의 뒷면처럼, 마치 외계인의 눈처럼 생긴 이 카메라로 우리가 무엇을 느낄지 궁금하다. 특히 360도 영상에도 미학적 기능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가 찍은 것이지만 영상 기록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묘한 여운을 남기는 예술적인 맛이 있다. 기계의 미학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다. 만약 암스트롱이 달에 360도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면? 달에서 바라본 푸른 별 지구, 인류가 달에 남긴 첫 발자국, 달에 선 우주인, 착륙선 등 모든 것은 전후좌우 빠짐없이 기록됐겠지만 과연 마음 한쪽에 뭉클한 감동을 주는 ‘한 컷’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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