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용접공’이라는 직업이 있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한국으로 유조선이 이동할 때 약 한 달 동안의 항해에 배에는 크고 작은 흠이 생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제때 수선하지 않으면 기름 유출과 같은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투입되는 게 수중 용접공이다. 바닷속에 들어가 땜질 작업을 하는 이들로 주로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이다. 이들이 이 특별한 기술로 버는 일당은 웬만한 근로자 4, 5명분의 월급이라 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처럼 안전과 관련한 전문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화학공장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대표 화학단지인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정유화학사들은 3, 4년에 한 번 1, 2개월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대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공장 안에 빽빽이 들어선 파이프에 간 균열, 파이프 내부에 낀 때 등을 정비하는 배관, 용접 작업을 비롯해 전기 점검까지 총체적으로 이뤄진다. 이때 투입되는 정비공은 대부분 숙련된 기술자다. 눈앞에 보이는 균열은 좀 덜 숙련된 기술자도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연달아 촘촘히 서 있는 거대 파이프 뒷면에 균열이 갔을 때는 고도의 기술자를 투입해야 한다. 이들은 파이프 뒷면 양쪽에 손거울을 놓고 거울에 비춰 거꾸로 보이는 균열을 양손을 동시에 써서 균질하게 보수한다. 이들의 작업을 현장에서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했다.
대정비 작업은 전문 기술자 풀을 최대한 활용해 정해진 기간 안에 제대로 마쳐야 한다. 공장 문을 아예 닫은 상태에서 하는 정비 작업이라 공장 가동이 하루만 늦어져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정비 작업은 야간 또는 심야근무 형태로 진행되기 일쑤다. 주로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이 맡는데, 이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한 공장에서 한두 달 작업한 뒤 옆 공장으로 옮겨 가서 일한다. 그리고 겨울은 쉰다.
그런데 이런 근무는 올해부터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주 52시간 근로제 처벌 유예기간이 끝나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6개월로 합의돼서다. 그나마 현행 3개월보다는 늘어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1년이라면 이들은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지만 노사정 대표들은 여러 차례의 파열음 끝에 6개월로 합의했을 뿐이다. 그나마 이 합의안도 국회를 통과해야 효력이 생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근로 형태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여수산단에서 한 대기업의 대정비를 십여 년째 맡고 있는 어느 협력업체는 대정비만으로 연 2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고 했다. 앞으로 이 회사가 법을 지키는 범위에서 같은 규모의 매출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기술자 풀은 한정돼 있고, 회사가 비용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가 비숙련공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최근 산업현장에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나는 배경에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는 게 산업계의 얘기다.
대부분 기업은 생산현장 무사고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생때같은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안전사고를 낼 경우 지방노동청으로부터 강제 생산중단 명령을 받는 등 잃을 게 너무 많아서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문제를 발견하면 원청업체에 보고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대신 직접 ‘작업중지 명령권’을 갖게 하는 곳도 많다.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이 합의의 테이블에선 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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