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입구에 라면 박스를 쌓아두고 냄비에 끓여 길거리 시식을 제공하던 장면을 기억하는 내 아내는 1961년생 한국 여자다. 형제 많은 집 막내로 라면 한 박스를 구입하면 주는 홍보용 티셔츠를 오빠들이 서로 입겠다고 싸울까 봐 엄마는 몇 박스씩을 구매했다고 한다.
박스를 채 비우기도 전 냄비 바닥에 라면과 함께 잘 익은 애벌레가 있던 장면 역시 기억하고 있다. 당시엔 곡류에도 흔히 벌레를 볼 수 있어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이렇듯 라면에 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나의 기억은 1972년 2월 19∼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날 밤 배를 타고 시베리아로 떠나기 위해 요코하마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TV에서는 나가노현 아사마 마을에서 인질을 잡고 혁명을 주도한 ‘연합적군’에 관한 이야기가 24시간 생방송됐다. 영하 15도의 추위에 연합적군과 대치하고 있던 자위대의 점심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이 배급됐다. 전 일본 역사상 89.7%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진압과정과 함께 보았던 컵라면은 그해 67억 엔(약 676억7000만 원)어치가 판매됐다고 한다. 전년 매출의 33배였다.
라면의 개발자가 누구인지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했지만 일본 오사카 거주 대만 태생의 안도 모모후쿠(吳百福·1910∼2007) 닛신식품 대표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8년 아내가 튀김요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 오늘날의 인스턴트 라면을 착안했다. 1년간 온종일 매달려 촉촉한 국수에 닭고기 맛이 나는 조미료를 뿌린 후 튀겨 습기를 제거하고 말리는 방법으로 ‘치킨라면’을 완성한다. 컵라면도 그가 개발했다. 유럽인들이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 그가 개발한 라면을 시식하는 모습을 보고 만들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 개발된 100대 발명품 중 라면은 10위 안에 포함되며 처음 개발된 그대로의 방법과 맛을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이며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순이다. 다만 1인 소비량으로 따지면 한국이 연 72개로 1위다. 아마도 삼계탕, 순두부, 찌개 등을 즐겨먹는 영향으로 추측된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은 ‘삿포로 이찌방’과 치킨라면이다. 두 회사 제품은 해마다 1, 2위를 다투지만 한국의 ‘신라면’도 4위를 달리고 있다. 라면 평론가들은 매운맛을 매력으로 꼽으며 ‘중독성이 강한 제품’이라 평한다.
미국의 유명한 라면 블로거 한스 리네시는 한 사이트를 통해 2018년 세계 10대 라면을 선정했다. 한국 ‘갈비의기사’ 라면은 10위였다. 물론 개인 취향이겠으나 서양인의 라면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라면 개발자 안도 모모후쿠가 1997년 세운 세계라면협회는 24개국 175개 회원사를 운영 중이다. 기근 대처와 자연 재해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재빨리 회원사를 보낸다. 특허권을 공유해 적절한 곳에 나누고자 한 그의 뜻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그의 라면에 대한 집념과 철학을 드라마(만복)로 만들어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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