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그래도 북핵은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6일 03시 00분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19일 오전 국회. 북한 영변 핵시설 등을 위성사진으로 분석해 유명한 미국 워싱턴의 ‘38노스’ 운영자 조엘 위트 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를 99%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직감은 맞고 있다. 트럼프의 북핵 해법은 전임 미국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특히 버락 오바마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안 했는데 트럼프는 온전히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위트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 중 한 명. 트럼프보단 오바마와 더 인연이 깊다. 북한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 북-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에도 단골손님이다. 그런 그가 트럼프는 싫지만 트럼프의 북핵 해법은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위트의 이 말이 생각나는 것은 베트남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성과에 대한 회의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회담을 하기도 전에 3차 회담을 예고하자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등 트럼프 특유의 허풍 섞인 언행들에 대한 반감과 불신까지 더해져 비핵화 회의론은 요새 거의 정점을 찍는 분위기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없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하노이에서 매일같이 실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개념 정의도 아직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회의론을 언급하는 국내외 인사들 중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한 경우는 별로 듣거나 보지 못했다. 대부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당위론이지 어떻게 김정은을 공략할지 방법론은 없다. 특히 미국에서 더 심한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야당인 민주당 계열이나 뉴욕타임스, CNN 등 반(反)트럼프 성향 매체 소속이다. 대부분 오바마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트럼프가 아니라 오바마가 지금 백악관에 있다면 김정은에게서 더 많은 비핵화 조치를 끌어냈을까. 천만에. 위트의 ‘내부 고발’처럼 오바마 재임 8년은 대북 정책의 암흑기였다고 기자는 본다. 왜? 실질적 변화를 위한 도전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아시아정책은 지금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였고, 중국 정책은 ‘아시아 회귀’였다가 ‘아시아 재균형’으로 바꿨다. 물론 다 나중엔 흐지부지됐다. 그사이 김정은은 현재 핵 능력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북한은 여섯 번의 핵실험 중 오바마 시절 네 차례(2∼5차)나 했다. 오바마가 뒤늦게 유엔 대북제재에 나섰지만 북한을 변화시킬 레버리지는 없었다. 오바마는 소통에는 제왕이었지만, 북핵 문제에선 망설이다가 실기한 햄릿이었다.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김정은을 몰아붙여 비핵화 테이블에 두 번씩이나 나오도록 한 사람은 트럼프라는 점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넘어 트럼프가 하는 모든 것을 비꼬는 미국 내 일부 목소리에 우리까지 덩달아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트럼프도 이번에 성과를 못 내면 김정은과 함께 ‘비핵화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핵화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몇 가지 새로운 조치에 합의하고 대화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면 회담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오바마 시절엔 생각도 못 했던 장면들이다. 하노이 핵 담판의 성패는 회담이 끝나는 28일 이후 따져도 늦지 않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38노스#조엘 위트#북한 비핵화#도널드 트럼프#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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