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생활지도교사 ‘구인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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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야, 학주(학생주임) 떴다.” 학생주임이 막강한 권력자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등굣길 학생주임 앞을 지나는 학생들 사이에선 쫄깃한 긴장감이 흘렀다. 남고생은 스포츠형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밖으로 삐져나오면 안 됐다. 여고생은 귀밑머리 3cm, 앞가르마, 치마 길이… ‘걸면 걸리는’ 규칙들이라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남고에서는 “엎드려뻗쳐”라는 고함과 함께 ‘퍽퍽’ 엉덩이 맞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과 후나 주말 극장 앞에서도 학생주임의 매서운 눈은 번득였다. 학생들은 토끼들이 하늘의 매를 살피듯 학생주임이 떴는지를 살폈다. 때로는 거친 말을 퍼붓고 출석부로 머리를 쥐어박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학생들의 앞날을 걱정해주는 학생주임 교사도 많았다. 그래서 기성세대에겐 중고교 시절 더더욱 잊기 힘든 기억의 한 단편이다. 그랬던 학생주임이 요즘은 권위주의 색채를 벗어버린 생활지도교사로 통칭되는데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지난해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가장 기피하는 보직으로 생활지도부장을 꼽았다. 경력교사들이 손사래를 치니 학교 내 약자인 기간제 교사나 신입 교사에게 생활지도를 맡기는 일이 빈번하다. 생활지도교사가 담당하는 업무인 학교폭력, 생활지도 등은 공문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학부모 민원은 폭주하는 일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라도 한번 열리면 교사들은 거의 수업을 포기해야 될 정도다. 학폭위 결과가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주다 보니 학부모들은 교사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한다. 생활지도에 열심히 나섰다가 오히려 학생·학부모 교원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학생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교사가 생활지도를 할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됐다. 교사의 역할이라면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인데, 이제 생활지도를 학교 내 다른 직군에 맡겨 달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학생주임을 피해 다니던 시절, 학생들은 늘 학교를 탈출하는 꿈을 꿨다. 이제는 교사가 학생과 직접 부딪치는 일을 피한다. 이런 학교에서 교사가 행복할 리 없다. 학생이 행복할 리도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학생주임#생활지도교사#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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