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라는 유명한 전술이 있다. 모루는 망치질을 할 때 밑을 받치는 단단한 쇳덩이인데, 그 위를 망치로 사정없이 두들기면 아무리 억센 철근도 결국 휘어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도 적군을 전후방 양쪽에서 강하게 협공하면 이를 당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이 작전은 세계 주요 전쟁사에 자주 등장한다.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을 무찌를 때 이 전술을 사용했다. 현대에 와서는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등이 기습적으로 적군의 후방을 쳐서 성과를 거둔 사례다.
이 전술이 성공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받침돌 역할을 하는 모루가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루가 부실하면 아무리 망치질을 세게 한들 적을 압박하는 효과가 사라진다. 아프가니스탄전쟁 때 미군은 반대편의 파키스탄군을 믿고 탈레반을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이들은 접경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모루 역할을 했어야 할 파키스탄이 도리어 탈레반을 푹신하게 껴안는 베개 역할을 한 것이다.
밑받침이 튼튼해야 성공하는 건 전쟁이나 망치질뿐이 아니다.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들도 경제의 제반 여건이 받쳐줘야 본래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가령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결정을 할 때는 경제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혹시나 과도하게 커지지 않을지 등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세금을 올릴 때도 납세자가 최소한의 담세(擔稅) 여력이 있는지 따지는 게 순서다.
그런데 만약 경제 여건이 취약할 때 강력한 망치질을 남발하면 어떻게 될까. 모루가 주저앉으면서 정책 효과는커녕 심각한 부작용만 생길 수 있다. 지금 노동시장에서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불과 2년 만에 30%나 올랐지만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그런 급격한 비용 증가를 견뎌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다던 대책이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는 종업원을 쥐어짜는 ‘악덕 기업’을 겨냥해 망치를 휘둘렀지만 정작 그 충격에 쓰러진 것은 정부가 도와주려 했던 서민 근로자였던 셈이다.
많은 전문가는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이 진보 정부 특유의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착취하는 고용주 대(對) 착취당하는 근로자’의 구도다. 이 틀에서만 보면 기업의 초과 이익을 빼내 돈 없는 근로자에게 더 얹어주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결론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 정부가 간과한 게 있다. 우리의 복잡한 경제 현실을 그런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돈방석에 앉아 노동자를 착취하는 산업화 초기 자본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반 근로자보다 형편이 어려운 고용주가 태반이고, 심지어 요즘은 종업원 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가게 문을 닫고 스스로 알바 전선에 뛰어드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허약한 모루에 쇠망치질을 해대면 버텨낼 수 있는 경제는 없다.
재화나 노동의 가격을 시장 자율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정말 비상시에나 하는 극약 처방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최근 만난 경제부처 관료는 “청와대가 가격 개입을 너무 좋아한다. 좀 말려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손에 망치를 쥐여주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지금 정부가 딱 그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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