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약인데 우린 한 달에 1000만 원을 내고, 피부암 환자는 50만 원을 낸다’는 말기 폐암 엄마를 둔 딸의 하소연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게시판의 제목은 ‘폐암 4기 우리 엄마에게도 기회를 주세요’이다. 순식간에 6만9000여 명이 동의했다.
2015년에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효과 좋은 치료약을 알게 됐다. 이 치료제는 현재 악성피부암인 흑색종에 이미 사용되고 있다. 흑색종엔 보험급여가 돼 환자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의 치료비만 부담한다. 암 환자는 급여 대상일 경우 치료비의 5%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암 환자의 경우 피부암과 같은 치료제이지만 아직 급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급여가 안 되는 소위 비급여의 경우 환자가 100%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폐암 치료제뿐 아니다. 암 환자 단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폐암처럼 암 환자는 많지만 사망률이 높은 암의 경우 급여되는 약은 효과가 충분치 않아 불가피하게 비급여 항암제에 의존하게 된다. 비급여 약제는 치료비 부담이 크다. 특히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치료제 중 면역항암제, 또 희귀질환자의 치료제들은 연간 1억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극희귀질환 치료제 일라리스의 경우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1년간 약 9600만 원에 이른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은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킴리아는 1번 치료에 5억 원 가까이 든다.
이런 약제들을 계속 써야 한다면 중상층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메디컬 푸어는 암이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에 막대한 치료비를 쓰면서 재산을 탕진해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저소득층으로 추락하는 상태를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표방하며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다. 그 덕분에 자기공명영상(MRI)기기, 컴퓨터단층촬영(CT), 초음파, 병실료, 간병비 등에 건강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많은 환자들은 여전히 치료비 지원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칠까. 이는 정작 필요한 비급여 약물치료비에 대한 급여화 작업이 더디기 때문이다. ‘한국 암 치료 보장성확대 협력단’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도입 이후 허가받은 약제의 급여실적을 보면 2017년 8개 약 중 4개가 급여화해 50%에 머물렀다. 지난해와 올해는 아예 급여화한 약이 없다.
비급여 약제가 급여화하기까지 걸린 평균 시간도 13개월이다. 급여를 기다리다가 환자는 메디컬 푸어가 되거나 죽게 생겼다. 더구나 최근 면역항암제의 경우 15개 항목의 급여 확대를 신청했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어 언제 급여화가 이뤄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한시가 급한 환자들을 생각하면 새로운 신약이 최대한 빨리 건강보험 대상이 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허가된 신약이라 해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보험약가를 인정받지 못하면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환자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메디컬 푸어 환자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신속등재’ 제도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허가를 받자마자 일단 보험급여를 해주고, 일정 기간 내에 급여평가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면 그만큼의 차액을 나중에 제약사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고가의 신약 항암제를 모두 급여화하기 힘들다면 일부 효과가 있는 환자에게 선택적으로 급여를 해주는 방법도 있다. 이 외에도 가벼운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비율을 더 줄이고 대신 암처럼 생명과 직결된 질환의 보험급여 대상을 확대하면 국가 입장에서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장대영 한림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효과가 높은 고가의 신약을 급여화할 때 현장 전문가와 밀접하게 상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신약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국내처럼 급여가 되지 않는 한 환자에게는 또 다른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현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며 문재인 케어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전 정부보다 약제의 급여화 비율이 낮다. 보건당국은 그 원인과 대책을 깊이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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