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아쉽지만 중요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영변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부분적인 경제 제재 해제가 논의된 사실 자체를 성과로 꼽았다. 특히 “영변 핵 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미국의 입장과는 차이가 커 보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능력의 매우 제한적인 일부일 뿐이라고 평가하면서 하노이 회담 때 핵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와 대대적 경제 보상이 담긴, 이른바 ‘빅딜’ 문서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영변 외 시설 문제도 이미 공론화된 상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폐기 제안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요구한 대북제재 해제는 명백히 거절됐는데도 “부분적인 경제제재 해제가 논의됐다”며 “대화의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맞춰 통일부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서 대미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이 대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재노력은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철저한 한미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최근 여권의 기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에 치우쳤으며,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도 북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오판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때의 선언적 비핵화 합의가 갖는 함정과 허점을 깨닫고 핵탄두와 물질, WMD를 모두 포함하는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다시 분명히 했다. 반면 김정은은 영변 시설 폐기 대가로 대북 핵심 제재 해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오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둘 사이의 중재는 북한엔 비핵화 진정성 이외의 해법은 없음을 설득하고, 미국엔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선 신뢰 구축이라는 단계를 밟아야 함을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냉철한 현실인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북-미 모두가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며 대화 재개는 그만큼 더 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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