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레돔은 여자 하나 믿고 한국에 왔다. 작은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지금 그가 행복한지 어떤지 알고 싶어 한다. 정작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 하루 코앞에 떨어진 일을 하고 저녁이면 야채수프를 먹고 잠자리에 든다. 코를 골면서 자는 걸 보니 그의 인생에는 별걱정이 없어 보인다.
정작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해외에서 물건들을 구입할 때다. 대서양을 건널 때 배가 뒤집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 아니다. 문제는 늘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코르크 뚜껑이나 뮈즐레(병마개 철사) 같은 작은 것부터 발효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샴페인 유리병이나 작고 큰 기계들까지 모두 수입해야 했다.
“유리병과 코르크에 대한 BL(선하증권), 인보이스(송장)와 패킹리스트, COA(장기운송계약), 재질분석표와 제품설명서를 주세요. FTA(자유무역협정) 세율 적용입니까? 지금 검역에 들어가야 하는데 수입식품 등에 관한 영업등록증부터 보내 주세요.”
사과밭 모퉁이에 양조용 포도나무를 심느라 구덩이를 파고 있을 때였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공장에서는 재질분석표 같은 것을 주지도 않았으며 코르크는 그냥 100% 나무인데 무슨 재질검사표가 있을까. 그리고 영업등록증은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지금 당장은 없다고 했다. 담당자는 대체로 냉정한 편이었다.
“수입자 이름의 영업등록증 없이는 통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리병을 파쇄하거나 다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 비용은 수입한 사람이 댑니다. 제품의 부피가 있기 때문에 수화물 보관료가 많이 나가는데 폐기 시 보관료도 함께 납부하셔야 합니다.”
나는 사과밭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집으로 달려갔다. 수입식품 관련 영업등록증부터 만들어야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생수업을 이수해야 하는 첫 단계가 있었다. 회원 가입 후 흙 묻은 손을 씻을 사이도 없이 한참 수업을 듣다 보니 수입에 관한 것이 아닌 제조에 관한 위생수업을 듣고 있었다! 나의 멍청함을 탓할 사이도 없이 다시 수업료를 내고 수입업 수업을 다 듣고 나니 시청에 가서 등록면허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시청으로 달려가 면허세를 내고 나니 또 다른 사이트에 가입해야 했다. 공인인증을 받아놓지 않아 은행까지 달려갔더니 오후 4시가 넘어 다음 날 해결해야 했다. 또 식품특별법 관련 신청을 해야 했고 수수료를 낸 뒤 영업등록증을 받았다.
“사흘 만에 만든 아이디만 해도 공책 한 권이 되겠다. 비밀번호는 또 어찌나 어렵게 만들라 하는지 조합하는 순간 다 잊어버렸어.”
우여곡절 끝에 유리병과 코르크를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영업등록증도 있는 ‘프로 수입업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각기가 들어올 때 또다시 ‘외계인’과의 통화가 시작됐다.
“이것은 정격전압입니까, 조정전압입니까? HS(국제상품분류) 부호명이 뭐죠? 품목식별부호는요? 자세한 것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국립전파연구원에 전화해서 제품에 대한 문의를 해보세요. 전기용품으로서의 안정성에 대한 검사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파쇄하시거나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는 대체로 무심한 편이고 나는 가슴이 팔딱팔딱 뛴다. ‘구, 국립전파… 뭐, 뭐라고요?’ 이 긴 수입 스토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나는 매번 신음소리를 내고 유체이탈 순간이 오지만 해피엔딩 결말을 끌어내야만 한다. 쿨쿨 잠든 레돔 옆에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외계인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수입 처리 완료되었습니다. 내일 물품 받을 수 있도록 배차해 두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단잠을 이룰 수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련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