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92〉내노라와 내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뉴스 자료에서조차 흔히 발견되는 오류를 확인해 보자.

● 내노라하는 주식 전문가
● 내노라 하는 유명 골퍼
● 내노라 하는 최정상 가수

밑줄 친 부분의 올바른 표기는 ‘내로라하는’이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 단어의 의미는 뭘까? 바로 사전을 찾기보다는 문장에서 의미를 이끌어 내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다. 제시된 예문에서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하다’라는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보다 더 직설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무협 소설 속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검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누구냐?”
“나다.”

여기서 ‘나다’가 ‘내로라-’의 가장 쉬운 의미다. ‘내로라하다’를 뜯어보면 이것이 더 분명해진다. 우리말 ‘나’는 ‘-다’와 직접 연결될 수 없는 품사다. 우리말 ‘명사, 대명사, 수사’는 모두 그렇다. 대명사가 서술어가 되려면 ‘이다’와 만나야 한다. ‘이것이 그것이다’처럼. ‘이다’의 이름이 ‘서술격조사’인 것은 이것이 붙어야 서술어의 자격이 생겨서다. ‘나다, 너다, 우리다’와 같은 표현은 ‘이-’가 생략된 것들일 뿐이다. 그래서 ‘내로라하다’ 안의 ‘내’는 ‘나+이(서술격조사)’이다. 그러면 ‘-로라’는 뭘까?

‘내로라하다’에는 복잡한 문법이 들었지만 항상 한 덩어리로 쓰인다. 이렇게 한 덩어리로 취급되는 말들에는 과거의 문법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말에는 세종대왕 당시의 문법이 그대로 들어있다. 현재 우리가 ‘나(이)다’라 말하는 것을 15세기에는 ‘내로라’라 했다는 의미다. 선학들은 여기에 관여한 ‘주격 일인칭’이나 ‘선어말어미 오/우’와 같은 복잡한 문법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국어학자들의 관심사다.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내노라하다’나 ‘내노라 하다’라 적고 싶을까? 오류가 자꾸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내로라하다’의 ‘-로라’와 관련된 문법을 알지 못한다. 당시 사람이 아니니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문득문득 이 말이 어디서 왔을까를 궁금해한다. 이런 궁금증은 때때로 음성적으로 비슷한 말을 어원으로 착각하게 한다. ‘내노라하다’(×)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내로라하다’의 어원을 ‘내놓다’로 보아 ‘놓다’의 ‘ㄴ’을 표기에 반영하는 것이다. 후보가 되는 ‘내놓으려’, ‘내놓아’, ‘내 놓아라’의 ‘ㅎ’은 발음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 발음은 ‘내노라’(×)와 음성적으로 더 비슷해진다. 이런 생각은 원래 어원인 ‘나(이)다’와의 관계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오류 표현이 더 많아지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의 어원을 인식하려는 생각은 긍정적인 것이다. 우리의 말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생기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인식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힐 필요는 있다. 음성적 유사성에만 머물지 말고 다양한 원리를 고려하라는 말이다. ‘내로라’의 ‘내’가 ‘나+ㅣ’라는 점은 우리의 현재 문법으로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열린 궁금증이 보다 더 의미 있는 언어생활을 만들 수 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내노라#내로라#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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