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한국 청년들의 충격적인 ‘미세먼지 스트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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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미세먼지 속에서는 태양도 종교도 대통령도 빛을 잃었다. 그저 북동풍이 불어오길 기다릴 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모두가 움츠러들었다. 시민들이 눈과 코로 미세먼지와 싸우고 있는 순간에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환경부의 문자메시지는 반복될수록 사람들의 부아를 돋우는 역할을 했다. 미래 세계에는 인공강우가 필요할 때 언제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말하던 게 40년 전 일인데 아직까지 실험조차 실패하고 있다는 것도 의아했다.

북핵 협상에서 ‘운전석’ 얘기로 리더십을 자랑하던 정부의 능력은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했다. 중국을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이끌어내기는커녕 객관적 사실에 대한 상호 확인조차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운전석의 위치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모양이다.

마스크 하나로 미세먼지와 씨름하자니 옛 고등학교 시절도 떠올랐다. 매달 민방위 훈련이 있었는데 북한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하는 날에는 마스크를 가져오라고 했다. 집에서 몇 년씩 굴러다니던 마스크를 가져와 얼굴에 쓰고는 운동장 나무 아래로 피신했다. 물론 그 마스크는 헐렁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생화학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설마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을 학생들에게 시키랴’ 하는 일말의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었다.

이번엔 미세먼지 때문에 개학하는 날 풍경부터 달랐다. 기관지가 약한 여학생은 목이 따가워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거리의 택시와 식당 매출은 약 20% 줄었다고 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어떤 손님은 영어를 배워 이민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심각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나는 급하게 연구팀을 가동해 설문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며칠 새 미세먼지와 관련하여 들었던 이야기들을 설문화해 서울의 5개 대학 700명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다.

60%의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결과에서 98%의 학생들이 미세먼지를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실제로 91%는 미세먼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86%는 구체적으로 재채기나 따끔거림 등 신체적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반응했다. 미세먼지의 원인으로는 중국으로부터의 유입 82%, 국내의 발전 및 공장 12%, 국내 자동차 3.8%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사실은 실증적 측정으로 규명돼야 할 사안이지만 설문 응답자들의 인식은 그랬다. 때로 인식은 객관적 사실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정책 당국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젊은 청년층이 미세먼지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는 충격적일 만큼 높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가 40, 소득격차로 인한 스트레스가 61, 진보와 보수 간 갈등으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가 58, 취업 관련 스트레스가 66으로 나타난 데 비해, 미세먼지로 인한 스트레스는 74로 나타났다. 높은 스트레스는 정부 대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90%가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을 신뢰하지 않으며, 91%는 가까운 장래에 정부의 대책으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65%의 젊은이들은 미세먼지가 계속된다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실토했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미세먼지는 국가적 자긍심과 애착을 파괴하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른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향후에는 정권을 뒤흔드는 사안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어떤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 강원도로 ‘탈미(脫微)’, 곧 미세먼지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75%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포기하더라도 환경 위주의 정책과 삶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주의에 반대했던 마하트마 간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곧 도시에서 소형화된 방독면을 쓰고 활보하는 사람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미세먼지#마스크#스트레스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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