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유종]캐나다의 ‘일자리 코드’ 훔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1일 03시 00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올 1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캠루프스에서 열린 정책 설명회에서 참석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캐나다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보다 토론토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 사진 출처 캐나다 총리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올 1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캠루프스에서 열린 정책 설명회에서 참석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캐나다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보다 토론토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 사진 출처 캐나다 총리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이유종 국제부 차장
방글라데시 출신 프로티크 다스는 2012년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아공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수학했다. 지난해 학위를 마칠 즈음 미국 방산기업에 취업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시민권자가 아니어서다. 창업도 쉽지 않았다. 창업하면 비자 기한을 더 늘릴 수 없다. 결국 같은 해 9월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고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언론에 “미국에서 핵심 인재들이 유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이민 억제 정책을 펴는 동안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정반대의 전략으로 핵심 두뇌를 빨아들이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2017년부터 IT 전문가들이 비자를 신청하면 2주 만에 처리하는 ‘글로벌 스킬 전략’을 추진했다. 연간 1만2000명 정도가 신청했고 95%가 비자를 받았다. 엔지니어, 의료인 등 전문가들은 ‘익스프레스 엔트리’ 프로그램을 거치면 취업과 관계없이 6개월 안에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나이, 학력, 경력, 영어 실력 등을 점수로 매겨 영주권자를 선발한다.

이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2007∼2017년 토론토에서 창출된 IT 일자리는 8만2100건으로 같은 기간 실리콘밸리의 샌프란시스코(7만7830건), 애틀랜타(3만4730건)보다 많았다. 유입된 인재들이 일자리를 더 늘렸다는 얘기다. 허드렛일이 아니라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 투자도 덩달아 늘었다. 벤처기업 투자액은 2013년 2억96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3억 달러로 상승세를 기록했다. 273만 명이 거주하는 토론토의 인구 절반 이상이 비(非)캐나다 출신일 정도로 핵심 인재의 용광로가 되고 있다.

캐나다는 접경국가이며 초강대국인 미국과 항상 경쟁해야 한다. 미국의 1월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 수준에 가까운 4.1%일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셰일가스 생산 중심지인 미국 텍사스주 서부에서는 이발사의 연 수입이 최대 18만 달러(약 2억300만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자리가 풍부한 미국에 핵심 인재를 모두 빼앗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 2015, 2016년 캐나다의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전공자의 25%는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인재가 들어와야 기술이 개발되고 창업, 사업 확대 등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만큼 핵심 인재를 빨아들일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캐나다의 적극적인 연구개발(R&D) 및 창업 정책도 이런 변화에 힘을 보탰다. 2000년 토론토 칼리지거리 101번지의 옛 병원 건물에 창업 지원기구 마스 디스커버리 디스트릭트(MaRS Discovery District)를 세웠다. 마스는 벤처기업 1200개의 탄생을 도왔고 일자리 1만2800개를 만들었다. 토론토에 정착한 핵심 인재들이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했다. 토론토에 첨단 연구시설을 짓는 기업도 늘었다. 2017년 우버가 토론토에 자율주행차량 연구소를 세웠고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토론토에서 기술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일자리 창출에 혈안이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에 기본인 핵심 두뇌를 유치하려는 소리 없는 전쟁이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디스플레이, 반도체, 항공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핵심 인력을 빼가고 있다. 그런 중국에서 성장한 유니콘(자산 1조 원 이상의 기업)이 올해 1월 기준 85개에 달한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핵심 인재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12조 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유니콘 20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중국, 일본 등에서 핵심 인재들을 대거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교육을 마친 저개발국 출신의 인재들마저 귀국하거나 미국, 유럽 등 대우가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게 현실이다. 출산율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재를 유지하거나 유치할 수 있는 매력도에서 한국은 주요 63개국 중 41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핵심 두뇌를 흡수할 치밀한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뭉쳐야 산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
#캐나다#일자리 코드#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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