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나바로 교수(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는 2015년에 쓴 ‘웅크린 호랑이’에서 중국의 구단선(九段線)을 ‘굶주린 소 혓바닥’에 비유한다. 중국이 자신의 영유권이 미치는 영역이라며 공해(公海)인 남중국해 주변에 일방적으로 그은 9개의 점선을 연결한 모양이 흡사 소 혓바닥을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남중국해를 독식하려는 중국의 일방적 팽창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실제로 필리핀 루손해협에서 시작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을 거쳐 베트남 해안선을 따라 중국 하이난섬 앞까지 뻗친 구단선을 적용하면 남중국해의 90%가 중국 영해가 된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산자원의 보고이자 인도양과 직결된 해상교통로를 독식하려는 중국의 야심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남중국해의 인공섬 곳곳을 군사기지화하는 것도 모자라 미 함정 및 군용기와의 정면대결 불사도 다반사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구축함이 미 구축함에 충돌 직전까지 근접하는 아찔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쯤 되면 자기 집 주변의 널찍한 공터 곳곳에 말뚝을 박고서 내 마당이니 접근하지 말라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과 진배없다.
중국의 ‘굶주린 소 혓바닥’은 한반도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 안방처럼 넘나드는 게 그 증거다.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오려면 해당국에 미리 알려주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하지만 중국 군용기는 지난달 23일 KADIZ에 무단 진입한 뒤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통과하면서 자국 함정과 교신하는 등 사실상 공해(空海)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도 8차례나 KADIZ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장시간 비행을 강행해 우리 군을 긴장시켰다. 잠시 넘어온 경우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중국의 KADIZ 무단 진입 횟수는 140여 차례나 된다. 2016년(50여 건), 2017년(70여 건)과 비교하면 가히 폭증 수준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KADIZ 도발 양상도 대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도 인근과 서해상에서 KADIZ로 들어왔다가 우리 전투기가 대응 출격하면 물러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서해와 대한해협을 거쳐 울릉도와 강릉 앞 동해상까지 휘젓고 다닌다. 우리 전투기의 경고 방송을 묵살하는 것도 예사다. 우리 정부의 엄중 경고와 재발 방지 요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모양새다. 되레 ‘통상적 훈련에 왜 시비 거느냐’면서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은 한 치 양보도 없다는 점이다. 중국중앙(CC)TV는 지난달 동중국해 CADIZ에 진입한 외국 항공기에 중국 전투기가 경고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방영했다. 앞서 2014년에는 이 구역에 진입한 일본 전투기를 중국 전투기가 실탄 위협사격으로 쫓아낸 뒤 일본 정부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의 ‘내로남불식’ KADIZ 도발에선 이중 삼중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굳히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중국은 2013년부터 백령도 인근 동경 124도를 서해 작전구역 경계선으로 설정하고 우리 해군에 넘어오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잇단 KADIZ 도발은 서해를 ‘안마당’ 삼아 동해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수순으로 봐야 한다. 중국군은 주한미군이 있는 한반도가 포함된 작전 반경을 넓혀 미군 접근을 막기 위해 ‘서해 장악’에 사활적 이익을 걸고 있다.
군사력 투사(투입) 능력 확보 포석도 깔려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항모와 신형 전폭기 등 원거리 작전용 첨단전력 증강에 다걸기(올인)해 왔다. 기존의 영토 방어 위주 전략에서 벗어나 역내 어디든 전력을 보내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KADIZ 농락은 그 역량을 과시하고 검증하는 최적의 전시 무대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안보문제의 이해당사자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킬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KADIZ 무력시위를 통해 한국에 계속 주지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실상 힘을 앞세운 강압외교 전략의 현실적 구현이다. 남북 및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동맹의 균열을 틈타 한반도에 입김을 키우려는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대국(大國)을 자처하면서 국제규범을 깡그리 무시하고, 무력시위로 주변국을 겁박하는 것은 자국에도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중국 지도부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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