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50〉훔쳐보고 싶은 욕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4일 03시 00분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바, 1897년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바, 1897년
타인의 몸이나 성적 활동을 몰래 엿보는 데서 쾌락을 얻는 행위를 관음증이라고 한다.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피핑 톰’은 고다이바 부인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많은 화가들이 이 전설을 그림으로 재현했지만 19세기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그림 속엔 젊고 아름다운 고다이바 부인이 알몸 상태로 백마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몸을 애써 가려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이자 백작 부인이었던 그는 왜 대낮에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인 걸까?

당시 남편인 레프릭 백작은 가혹한 세금 징수로 코번트리 사람들에게 큰 원성을 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 많은 고다이바 부인을 찾아가 호소했고, 부인은 남편에게 이들의 세금 감면을 청했다. 아내의 반복된 청에 질린 백작은 부인에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품위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부인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이 치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알몸으로 마을을 지나는 동안 모두 집 안에 머물렀고, 창을 닫고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 백작 부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모두가 그렇게 약속한 것이었다. 그런데 재단사였던 톰은 아름답다고 소문난 부인의 알몸이 너무 보고 싶어 그만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백작 부인의 몸을 몰래 훔쳐본 톰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님이 되었다고도 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다이바 부인의 숭고한 행위를 성적 호기심으로 더럽힌 죄로 신의 저주를 받아 그리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존 콜리어#레이디 고다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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